▣행전-계시록

율법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길 (행 22:30-23:11)

공 상희 2009. 6. 9. 11:47

율법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길 (행 22:30-23:11) 
 

 

이 시간에 “율법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올무에 걸리는 수가 있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이 때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한 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91:3에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 갈 때 올무에 걸어 죽이려는 무서운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의 세력입니다. 하나님을 적당히 섬길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고 하면 반드시 찾아오는 문제가 바로 율법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결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문제로 고통 당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직 믿음의 중심부와는 상관 없지 않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바울이 율법의 최고기관인 이스라엘의 산헤드린 공회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한 번 걸리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곳입니다. 앞장에서 바울이 로마시민권을 이용해서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무지한 천부장 루시아의 서투름으로 또 다시 깊은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산헤드린이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을 심문하고 베드로와 스데반을 심문한 악한 곳 아닙니까? 산헤드린의 구성원은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로서 반기독교 집단입니다. 거기 넘어가면 결과는 뻔합니다. 바울의 경우 혐의가 없으므로 석방시키면 되는데 무지한 천부장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럼 율법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요?

1. 양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1절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여기 양심을 따라 섬겼다는 것은 말씀을 따라 살았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은 말씀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심은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양심은 우리 심령을 보호하는 중요한 기관이지만 한 편으로 치우치면 심각한 영적 질병에 빠집니다.

사람의 몸도 면역이 너무 낮아도 높아도 안 된다고 하지요. 면역이 사람의 몸을 보호하는 기능이지만 너무 낮으면 세균을 이겨내지 못해서 병이 옵니다. 그래서 설탕 같은 가공식품을 멀리해야 합니다. 반대로 면역이 너무 높으면 면역기관이 정상적인 인체까지 공격해서 난치병이 옵니다. 그래서 알레르기가 오고 천식 류마티스 건선 아토피 홍반 동맥염 파킨슨 구내염 안구건조 등 각종 병이 옵니다. 이런 분들은 심장에 좋은 음식을 적게 드셔야 합니다.

양심도 이와 같아요. 너무 양심이 둔해서 죄가 죄인 줄 모르는 화인 맞은 양심이거나 반대로 너무 양심이 예민하면 죄 아닌 것도 죄로 여기는 참소 받는 양심이 되면 우리 심령은 심각한 시험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회개는 하되 죄 아닌 것 가지고는 회개하지 마세요. 그래서 롬14:22에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2. 정죄를 물리쳐야 합니다.

2-3절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율법은 판결이 나기까지는 심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이 변론을 시작하자 말자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합니다. 이 때 바울은 이런 불법적 처사 앞에서 율법의 정신으로 강하게 항거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라 했으니 이보다 더 강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율법의 올무에서 벗어나려면 그리스도의 이루신 복음에 서서 정죄를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자를 정죄하는 것은 불법이라, 나는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다 함을 받은 용서 받은 의인이라고 믿음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하면 징계하시기도 하시고 서운해 하시기도 하시지만 원리적으로 보면 주님의 용서는 영원한 속죄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구원 받은 사람도 진짜 버림받을 수 있다는 말은 원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말입니다. 진짜 구원 받은 사람은 완전한 타락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속죄를 믿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기반은 견고한 것입니다.

3.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4-5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인 줄 모르고 대항했지만 알고는 사과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회개입니다. 영원한 속죄를 믿는다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단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믿지만 잘못했을 때는 죄를 고백하고 눈물로 뉘우치고 돌아서야 합니다. 성령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을 고백하며 마음 아파해야 합니다.

요일3:4에 “죄는 불법이라” 했습니다. 마음에 썩은 송장 같은 죄를 물리치세요. 마음에 죄를 두고 양심의 평안을 바랄 수 없습니다. 율법도 이런 면에서는 필요합니다. 율법은 인간으로 죄인임을 알게 하여 구세주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내 공로로는 안 되므로 피의 복음에 서게 하고, 악한 자신을 발견하여 죄를 회개하게 하고, 자신의 무능을 발견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갈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는 언제나 율법 앞에서 죽어 마땅할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해 주심을 믿는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4. 부활의 복음에 서세요.

6-8절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바울은 올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가 바리새인이며 부활을 믿는다고 선포합니다. 유대에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라는 두 종파가 있었는데 두 파는 교리적으로 상극관계였습니다. 바리새파는 부활이나 천국 천사를 믿는 반면 사두개파는 그것을 믿지 않는 신신학자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기파를 밝히고 부활을 믿는다고 선포하자 장내는 일시에 두 파간의 대립으로 어수선해졌습니다.

만약 최고 기관에서 잘못 판결하면 판례가 되어 한 편이 아주 매장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두개파는 바울을 이단이다, 바리새파는 부활을 믿는다고 이단이냐 하면서 싸우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상대방의 분열과 반목질시를 노린 것이 아니냐 할지 모르지만 부활은 언제나 선포해야 할 복음일 뿐 아니라 그렇게 해야 만이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바울이 자유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우리를 율법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나도 죽고 율법도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젠 상관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산자가 되어 죽은 율법 남편에게서 벗어나 너그러우신 예수님에게 시집왔습니다. 완전을 요구하는 율법 앞에 완전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회개해도 여전히 누추할 뿐입니다. 그런 남편과 같이 사니 더 악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남편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율법 남편 던져 버리고 자유를 택하세요.

그래서 롬7:1-3에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예수 남편은 너그러워서 시집살이시키지 않아요. 부족해도 봐 줘요. 성령을 주셔서 도와 주셔요. 예수님께로 가 보세요. 모든 짐을 내려주시고, 모든 삶은 자동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지고 인생이 그렇게 편할 수 없어요.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 잘난 율법 남편은 해준 것도 없으면서 잘못한다고 일마다 구박이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롬7:4-5에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주님을 더 체험하시고 자신도 자신을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5. 특별한 은혜를 받으세요.

9-10절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상황이 이렇게 되니 바리새인들도 바울을 돕고 천부장도 바울을 돕습니다. 아무도 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특별한 지원을 어떻게 받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요일2:10에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다고 했습니다. 요일3:21에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 했습니다. 그리고 요일4:17에 사랑하면 심판 날에도 담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아직 부족한 것 많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신을 정죄하는 정죄감이 없습니다. 정죄하려고 해도 정죄가 되지 않는 어떤 신비한 은혜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피부에 느낄 만큼 변호해 주시고 강력하게 진 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6. 담대히 나아가세요.

 

11절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얼마나 든든하신 주님의 말씀입니까? 우리의 삶도 주님을 믿고 담대해야 합니다.

 

롬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했고, 히4:16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버지 앞에 서는 날까지 예수 피 공로 믿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담대하게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부장 루시아의 서투른 솜씨가 바울을 깊은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우리 믿음도 진리에 어설프고 서툴면 올무에 빠집니다. 새가 올무에서 빠져나오듯 바울이 산헤드린을 빠져나오듯 빠져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진리에 서서 너그러우신 아버지의 사랑과 피로서 갚아주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 또 의롭게 살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온전히 율법의 올무에서 벗어나서 아름다운 천국의 열매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