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 생각의 특징 (행 24:1-9)
육신 생각의 특징 (행 24:1-9)
이 시간에 “육신 생각의 특징”이라는 제목입니다. 미국 뉴욕 타임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리더쉽과 자기계발의 전문가인 존 맥스월은 그가 쓴 ‘생각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것은 다 그 사람이 생각에 따라 결정이 난다.”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생각을 하고,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습니다. “우리의 오늘은 어제의 생각의 결과이고 우리의 내일은 오늘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판단도 잘해야 합니다. 믿음에 대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영생의 복을 받지 못하거나 혹은 누리기에 늦어집니다.
오늘 본문의 벨릭스 총독이 그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에서 온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을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 아주 뻔하고 뻔한 사실을 무려 2년이나 바울을 가이사랴에 구류해 두며 처리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을 뿐 아니라(27절) 더 직접적으로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으려고(26절) 그렇게 한 것입니다. 벨릭스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예수의 복음이 무려 2년이나 지체 되었습니다.
총독 벨릭스는 A.D.52-60년까지 8년간 유대를 다스렸던 자입니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어 총독까지 된 자수성가한 대단한 사람인데 아주 부도덕하고 무자비하고 음흉한 자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반란에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대제사장을 살해했으며 타인의 아내를 빼앗아 결혼했고 불의한 재물을 쌓은 자였습니다. 생각이 잘못된 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진 달음박질해야 할 복음이 그의 어리석음 때문에 지체되고 또 지체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었지만 복음이 우리 안에서 더 인격 깊이 확산되지 못하고 겉에만 머물러 있다면 진실로 회개해야 합니다. 벨릭스가 유대인들을 의식한 것처럼 세상에 비위 맞추거나, 뇌물을 바랐던 것처럼 축복만을 생각한다면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벨릭스가 변사 더둘로의 말을 받아들이면 바울은 죽게 됩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이 이익이 될 것 같고 그럴듯해도 그 생각을 물리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심령이 죽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육신은 듣기 좋은 말을 더 원합니다.
2-3절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 무지하옵나이다” 얼마나 아첨하고 아부하는 말입니까? 각하라는 말도 나옵니다. 벨릭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의 찬양과 아부의 말로서 벨릭스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유대역사가 요세푸스나 로마역사가 타키투스는 벨릭스의 악정과 상습적인 잔혹행위를 비난하고 있어 변사 더둘로의 말은 모두 거짓인 아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악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칭찬을 좋아합니다. 쓴 것이 몸에 좋음에도 달콤한 말만 원합니다. 칭찬해 주고 좋은 말만 해보세요. 나빠할 사람이 있는가?
그러나 듣기 좋은 말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 심령이 죽어요.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의 말이나 감사나 창찬의 말을 자기가 들으면 괴로워서 견디지 못합니다. 듣기 좋은 말에 기울이면 자만하고 교만하고 버릇이 나빠지고 더 악해져요. 절대 듣기 좋은 말만 가지고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진정 변화받기를 원한다면 인죄론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2. 육신은 사실적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4절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참으로 교활하기 짝이 없는 말입니다. 그는 바울을 고소할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면서 증거가 많이 있지만 괴롭게 아니하려고 대강 여쭙는다는 식으로 사실을 위장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더둘로는 법률을 이용하는데도 박식한 자일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심히 교묘하고 탁월한 사람입니다. 재판의 세계에서 대강이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증거 없는 판결은 율법위배입니다. 강제로 시인케 한다 해도 증거가 없으면 범죄자로 정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은 증거가 없음에도 뭐가 사실인양 문제인양 큰일인양 혹은 문제가 아닌 양 왜곡되게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말하고 보이는 대로 행치 않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이 사실 같지만 사실이 아니고 진리도 아닙니다. 나사로가 죽어 나흘이매 냄새가 나는 것이 더 사실입니까? 아니면 살아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더 사실입니까? 홍해가 가로놓였어도 홍해가 진리가 아닙니다. 구원해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진리입니다. 금융위기보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더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육신은 절대 진리인 말씀보다 육신의 환경을 더 믿고 더 사실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 들고 낙심합니다. 더둘로가 얼마나 교묘한지 모릅니다. 이처럼 그럴듯한 육신의 생각을 절대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육신은 왜곡의 천재입니다.
5절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여기 소요란 정치적 문제의 용어입니다. 바울이 소요사태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법으로 처단을 받아야 하겠지요. 이처럼 그는 종교적인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왜곡시켜 바울을 고소합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은 얼마나 왜곡의 천재인지 좋은 것을 나쁘다. 나쁜 것을 좋다, 더러운 것을 깨끗하다, 깨끗한 것을 추하다, 아주 왜곡의 천재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눈에 선악과가 하나님처럼 만들어 주는 그렇게 신령하게 보이고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롯의 눈에는 죄악의 소돔성이 여호와의 동산 꿈동산처럼 보였습니다. 육신의 왜곡된 생각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를 위해 내 몸 아끼면 그것이 아끼는 것인 줄 아세요? 주를 위해 내 물질 아끼면 그것이 부자 되는 길입니까? 혹은 주일성수하고 하루 쉬면 손해가 막심하고 될 일도 안 될 것 같나요? 사실을 왜곡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런 생각이 그만 속아야 합니다. 변사 더둘로가 멀리 있지 않아요. 육신의 생각이 바로 악한 대제사장 아나니아요 변사 더둘로입니다. 이 육신의 생각을 물리쳐야 복을 받습니다.
4. 육신의 생각에 동조자가 더 무섭습니다.
6-9절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마치 바울을 현장범인 것처럼 말하면서 심문하면 증거가 나올 것이라고 할 때 함께 온 유대인들 그 주장에 옳소 하는 장면입니다. 이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악감 가진 주모자들입니다. 더불로는 잠시 기용한 변사일 뿐 이 동조자들이 더 악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아무 잘못도 없는데 때리면 나올까요? 바울은 결코 성전을 더럽힌 적이 없습니다.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간 적도 없습니다. 도리어 성전에서 율법에 따라 거룩한 나실인의 결례를 행하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핍박을 면하려는 것으로 바울이 유대인들을 자극할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짓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는지 재판정은 온통 바울을 정죄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처럼 육신의 거짓된 생각에 동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뱀이 먼저 하와의 생각에 침투했습니다. 생각이 바꾸어지자 선악과가 그렇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1단계로 생각이 정복되면 2차로 감정이 정복되어지게 되고 감정이 정복 되면 의지 정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냥 쉽게 넘어가고 맙니다. 그 때는 내가 원해서 끌려가기 때문에 스스로도 감당치 못합니다. 그 때는 제가 이런 가운데 있어요 하면서 주님을 부르며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에 감정의 동조가 있으면 크게 잘못 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책망하고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그리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사단은 주님을 넘어뜨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으로 생각의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 물리치셨습니다. 지금도 육신의 생각은 엄청난 호소력으로 우리를 넘어뜨리고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따라 악한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생각의 첫 단계에서 마음을 잘 지켜 온전히 승리하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