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공동체(1) 부부의 비밀(엡 5:22-33)
가정 공동체(1) 부부의 비밀(엡 5:22-33)
한 세상 평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여러 유형의 다양한 공동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 가장 의미있는 두 개의 공동체가 있다면 가정과 교회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절정이 바로 가정의 탄생이라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인 십자가 사건의 결과가 바로 신약 교회의 탄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세상에 태어나며 경험하는 첫 공동체가 가정이라면,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나며 경험하는 첫 영적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가정의 기초가 부부관계라면,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부부관계의 진정한 교훈을 우리가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에서 배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교회라는 현장에서 가정생활의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이 주일이 되면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을 기쁘게 할 것인가를 신경쓰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녀 양육의 열쇠를 자녀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부부관계에서 출발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자녀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잘해 줄 것인가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부부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자녀 양육의 문제는 저는 부모의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의 과잉관심, 과잉 보호에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오늘의 부모들은 부부관계의 불건강함을 자녀들에게 쏟아 붓는 물질적인 보상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제공할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부부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유산으로 남겨 주는 것입니다. 얼마전 우리 교회 주일학교 교육 목자들과 자리를 같이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목자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만장일치로 대답한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부모가 싸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부관계의 성경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부부가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됨이며 결혼의 서약은 하나됨의 서약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본문 31절에서 결혼을 정의하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부부는 마땅히 하나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됨을 상징하는 사건이 바로 성적인 연합인 것입니다. 그 누구와도 나누어 가질수 없는 부부만의 육체적인 하나됨-이것이야말로 부부의 영적이고 정신적인 하나됨을 상징하는 그림같은 비밀인 것입니다. 31-32절을 읽어보십시오. 바울사도는 이것을 큰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비밀의 다른 그림을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서 찾습니다. 우리 주님과 성도가 하나됨과 같이 부부도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처럼 가정붕괴의 위기의 시대에서 우리 부부가 어떻게 진실로 하나되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부부는 피차에 복종해야 합니다.
본문의 시작은 22절입니다. 그러나 22절 이하의 교훈의 전제를 이루는 것이 바로 21절의 말씀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22절 이하의 부부관계의 교훈을 다루면서 성경은 먼저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여기 본문에서의 복종의 교훈이 아내만을 향한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작업이 아닙니다. 22절 직전에는 21절이 있다는 것만 유의하시면 됩니다. 21절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가 서로에게 피차에 복종한다면 부부가 하나의 팀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왜 우리가 서로에게 복종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습니다만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부부사이에서도 손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다 보면 갈등을 피할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기심을 극복할수 있겠느냐가 관건입니다. 바울은 이미 그 해답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라고 말씀합니다.
남편도 그리스도앞에 아내도 그리스도앞에 나와서 그리스도의 주권앞에 서로의 이기심,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분의 주인되심을 경외하고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은 남편도 아내도 아니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주인되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때 비로소 주안에서 서로를 높이며 서로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2:5에서 바울은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빌2:6-8)마음이 아니십니까? 우리 부부가 만일 이런 그리스도의 마음(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마음)만 가질수 있다면 피차에 기쁨으로 서로에게 복종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우리 부부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높여 드리고자 하는 그 마음의 자리-거기에서 우리 부부는 비로소 각자의 이기심을 넘어서서 피차에 기쁨으로 복종함이 가능할수 있는 것입니다.
2.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하나되어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남편의 아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는 아내를 향한 교훈과 남편을 향한 교훈이 동시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본문을 살펴보시면 바울사도는 아내에게 보다 훨씬 더 많은 지면을 남편에게 할애하고 있습니다.(25절 이하에서 33절까지) 부부관계의 온전한 연합을 깨트리는 쪽이 아내라기 보다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남편들의 아내사랑의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사랑의 방법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28절에 보면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같이 할지니”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몸을 사랑합니까? 몸을 사랑하려면 몸에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가 몸에 필요에 민감하지 못하면 무의식속에 몸을 학대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남편들은 스스로 자기가 아내를 학대하고 있다고 생각치 않지만 아내들은 남편에 의해 학대당하고 느끼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남편들이 아내의 정서적인 필요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인 자기 주장으로 아내를 이끌어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요구하는 사랑의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가치감을 존중함인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3:7에서 “남편된 자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자로 알아 더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남편이나 아내가 다 그릇으로 묘사됩니다. 우리는 다 깨지기 쉬운 그릇 상처받기 쉬운 그릇들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아내들은 더 그렇다(더 깨지기 쉬운 그릇)는 말입니다. 정서적인 감수성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수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남편들의 무례함으로 아내들이 상처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 사랑의 시작은 이런 아내의 마음을 보호하려는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귀히 여기라’는 말을 보석처럼 여기라는 말로 번역한 학자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25절에서 사도 바울은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아가페의 사랑으로 남편들은 아내에게 접근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십자가의 사랑은 아주 단순하고 중요한 한가지 전제에 기초한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께서 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가셔야 했습니까? 그만큼 그는 우리의 존재를 귀히 여기신 때문입니다. 이런 존재의 가치감이야 말로 아가페 사랑의 기초인 것입니다. 오늘 고통받는 아내들의 목소리는 하나입니다. ”제발 나(아내)라는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당신의 말로 행동으로 보여만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가정의 붕괴의 위기는 아내의 존재의 가치감을 너무 쉽게 유린하고 박탈해온 남편들에게 90%의 책임이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흥미있는 사실은 자기 아내가 남편의 성적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고 불평하는 아내의 90%는 자기라는 존재가 남편에게 짓밟히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과의 동침을 거절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려는 마지막 자존심의 발로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자리가 축복의 자리가 되려면 평소에 아내 사랑이 앞서야 합니다. 우리가 몸을 잘 돌보면 몸이 우리를 지킬 것입니다. 주님의 가장 큰 기대는 당신의 신부인 교회가 영광스럽게 세워지는 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본문은 남편의 존재이유가 자기 아내를 거룩하고 아름답게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아내가 건강하면 가정이 건강해 집니다. 가정이 건강해지면 세상이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아내를 사랑하기를 결심하고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3. 아내는 남편을 높여주어야 합니다.
가정 회복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정 세우기의 역할에서 아내가 결코 책임 면제된다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으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5:22-23)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내의 책임 가운데 하나가 남편을 머리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머리는 리더십의 상징입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리더십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가정에 리더십의 상징인 아버지를 주신 이유는 땅의 아버지를 통해서 자녀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를 아버지 되게 하는 것이 아내의 책임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면 자녀들이 또한 리더십의 상징을 잃어버립니다. 아동 범죄 연구소에 나온 통계를 보니까 교도소에 수감된 문제아들의 45%는 아버지와 함께 자라나지 못했고, 다른 40%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자라났고 다시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준 제1원인은 어머니인 것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으면 아버지를 집에서 세워 주십시오. 심리학자들은 인간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열망을 가르쳐 “father-hunger"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우리 자녀들의 마음속에서의 아버지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입니다. 남편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세우고 아버지를 세울 때 그것이 바로 자녀의 미래를 세우는 것임을 잊지 알아야 합니다. ”아바의 자녀“라는 책을 쓴 작가 브래너 매닝이 어느날 뉴욕의 전철을 탔는데 아이들 넷을 데리고 탄 흑인 어머니가 어린아이들이 울고불고 전철안을 돌아다니는데 무표정하게 방관하는 것을 보고, 보다 못해 참다못해 “부인, 어떻게 아이들을 타이를수는 없으신가요?”했더니 부인이 의외로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글세 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럴 때 늘 아버지의 말을 들어 왔는데 어제 애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이 순간 그는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존재를 감동으로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하늘 아버지처럼 완벽한 존재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을 통해 하늘 아버지의 존재를 배워가야 한다면 우리의 어머니가 그 아버지를 세우고 높이는 중보자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누군가가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의 인상”이란 제목의 시를 남겼습니다. “내가 네 살때 아버지는 전능한 신이었고 요술쟁이 산타 였지. 그러나 내가 7살이 되자 아버지는 할수 없는 일이 많으시고 모르는 것이 많은 무능자이셨다. 내가 14살이 되었을 때 그는 캐캐묵은 귀찮은 꼰대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27살 결혼 나이가 되자 그는 다시 내게 조금은 필요한 존재가 되었지. 내가 35살이 되자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의견과 충고를 처음으로 묻기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50세가 넘어서자 나는 아버지가 이럴 때 이떻게 하셨을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60세가 되자 나는 너무나 그의 의견을 필요로 했지만 그는 더 이상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
아내 여러분, 당신의 남편을 좋은 아버지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를 당신의 주님으로 섬겨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남편을 리더로 세우신 주님께서 당신의 가정의 주인, 가정의 아바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남편, 당신의 주님과 하나되어 인생을 건강하게 여행하는 행복한 비밀의 주인공이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