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요 14:15)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요 14:15)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만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고 생각도 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알아 보도록 합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인가 성경말씀을 보십시다. 우리는 항상 성경 말씀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예화)
지금으로부터 약 20여년전 경남 산천군 어느지방에 예수님을 잘 믿는 어린 주일 학생이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에 다니는 이 어린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일이면 교회에 빠지는 일이 없이 출석을 하였습니다.
이 어린이의 이름을 박요셉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부모들이 이 요셉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잘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요셉이라고 지어 불렀습니다. 요셉은 기도도 잘하고, 인도도 많이 하고, 공부도 잘해서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모범스러운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에게는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태극기를 보고 경례를 하라고 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아무뜻도 모르고 꾸벅 절을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것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교회당에서 죽은 사람이나 인격이 없는 물체에 절을 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이지 절을 받을 인격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꼭 일본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기를 보고 절을 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요셉은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나라를 사랑한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태극기를 보고 절을 하는것은 하나님의 미움을 사는 일이니 나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한 요셉은 형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형님! 태극기를 보고 절을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까?"
형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죄가 된다.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이지 인격은 아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경례를 할 때 주목을 하고 나라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이 나라를 살피소서 하고 기도하면 되는거지".
요셉은 물론 태극기를 보고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학생들에게 태극기에 절을 하지 않도록 말했습니다. 다음날, 학교에서 큰 소동이 일어 났습니다. 태극기 경례 문제로 교회 주일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 앞에 불려 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노했습니다. "태극기 앞에 경례를 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나라 백성이 아니다. 공산주의 자들이란 말이야! 너희들은 다 퇴학이다. 내일 부모들을 데리고 와!" 그때 요셉이 말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어찌하여 태극기를 향해 경례하지 않는 사람이 공산주의 입니까? 우리는 대한민국을 목숨처럼 사랑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를 보고 절을 하지 않습니다. 기를 보고 절을 하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망하였습니다. 독일이 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안하시는 것입니다."
다음날, 요셉이만 퇴학이 되고 다른 학생들은 용서가 되었습니다. 교회 학생들도 교회보다 학교를 소중히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태극기를 보고 경례하리고 하고 모든 학생들은 다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퇴학이 되어 집에 있었습니다. 요셉은 날마다 기도만 하였습니다. 요셉은 국민학교 졸업도 못하고 중학교 진학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중학교 검정시험 날짜가 신문에 나왔습니다. 요셉은 열심히 공부하여 검정시험에 응시 했습니다. 합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중학교 일학년이 되었습니다. 다른 학생은 6학년인데 요셉은 중학생이 된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과 질서를 지키는 일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마 25:40)
예수님께서 세상 마지막 때 되어질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마지막엔 큰 심판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왕중의 왕으로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병들고 가난하고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며 사랑을 베풀었으니 즐거움의 나라로 들어 가거라"그때 사람들이 말합니다.
"임금님! 언제 우리가 그런일을 하였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 준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니라". 물론 이 말은 착한 일만 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불쌍한 마음을 가지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착한 일도 하여야 합니다. 착한일 중에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위해주는 것은 예수님의 축복을 받게되는 귀한 일입니다.
(예화)
미국의 이름있는 시인 로웰이란 사람이 쓴 글 가운데 "롱펠의 꿈"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롱펠은 중세시대의 어느성의 군주였습니다. 그는 말타기를 좋아하며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롱펠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뜻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때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작별의 저녁 식사를 하실 때에 포도주를 부어 마시게 한 은잔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듣건데 그 은잔은 후에 미술가의 손에 넘어가 예수님과 열두제자들 얼굴이 밑바닥에 그려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유명한 은잔을 찾아 후대 사람들에게 기념으로 준다는 것은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롱펠은 긴 여행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물통에는 물이 가득하고 자루에는 빵이 가득했습니다. 모든 짐을 말 잔등에 실었습니다. 돈도 넉넉히 가지고 말을 탔습니다.
성문을 지나 먼 여행길을 달렸습니다. 어느 벌판을 지나가다가 문등병 환자를 만났습니다. 문등이는 배가 고파 보였습니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형제여!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나를 도와 주세요. 먹을것을 좀 주세요. 물을 좀 주세요." 구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롱펠은 말 위에서 거칠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의 가는길을 방해하지 마라. 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구주예수의 은잔을 찾기 위해 떠나가는 몸이다. 더러운 문둥이가 어찌 나의 가는 길을 막는가?"
문등이는 더욱 애걸을 하면서, "나를 살려 주세요. 이대로 두면 굶어 죽습니다". 고 하면서 말앞에 엎드렸습니다. 롱펠은 금돈 한 개를 던져주고 말을 달렸습니다. 롱펠은 이곳 저곳 다니며 은잔을 찾았지만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10년 가까운 세월로 구라파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였지만 헛수고 였습니다.
롱펠은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꿈은 사라지고 떨어진 옷을 걸친 그는 힘없는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추운 겨울 이었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벌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롱펠은 기진하였습니다.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간신히 몸을 가누며 걸어가다가 그는 걸인을 만났습니다. 걸인은 쓰러저 죽을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추운데 ……저 노인이 ……." 롱펠은 쓰러진 걸인을 일으켰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으로는 이 빵과 물이 있을 뿐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것을 받으세요." 그리고 차고 있던 표주박을 들어 물을 따라 빵과 함께 걸인에게 마셔 주었습니다. 물을 받아 마시던 걸인은 홀연히 빛이 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라! 나로다 두려워 말라. 너는 은잔을 얻으러 이나라 저나라 여행하였으나 너의 얻은것은 무엇이냐?
보라! 너의 손에 들려있는 쪽박을 ……나에게 물을 준 그 쪽박이 네가 찾아 헤매던 은잔이니라. 네가 준 그 빵이 찢기운 나의 몸이요. 나에게 마시운 그 물이 십자가의 피로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음식이 성찬이로다. 롱펠은 정신을 차려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재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가까운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임을 알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합시다.
주님을 사모하자
(시 73:25)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것을 아낍니다.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어느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그리워 하여야 합니다.
주 밖에 사모할 자가 없어야 합니다. "사모"라는 말은 몹시 그리워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몹시 그리워하여야 합니다.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알아주심을 기뻐 하여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에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부지런히 나와 기도하여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시간이 있으면 에수님 앞에 나와 기도하여야 합니다. 자주 나오면, "오 너 또 왔구나." 하고 우리를 알아 주시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또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예화)
어떤 부흥회를 인도하시던 목사님이 예배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낫선 할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아이구, 목사님 예 ……, 날 아시겠능교?" 할머니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목사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싱글 벙글 웃었습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목사님은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목사님이 그를 모르겠다고
하는 말에 슬픈 표현을 얼굴에 감추지 못하면서, 대구에서도 만나고, 광주에서 만나 인사를 하였는데……나는 목사님 집회인도 하는 곳에는 어디든지 가는데 ……" 하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할머니의 실망에 찬 모습을 동정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용서 하십시오. 하도 많은 사람을 대하다 보니 실례를 하였습니다." 그 후 부산에서 목사님이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열심히 설교 하였습니다. 예배를 마친 다음 뒷문으로 나가는데 뒤에서, "목사님! 목사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낯선 할머니가 "목사님 안녕 하십니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목사님도 대답 인사를 하였습니다. "목사님 저를 아시겠습니까?" 할머니는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글쎄요. 잘 기억이 안납니다." 할머니는 목사님의 말에 대단히 실망한 표정으로 "나는 몇번이나 조용히 만나 인사를 하였는데……" 하면서 돌아섰습니다.
어느날 목사님께서 서울 자기 사택에서 쉬고 있는데 "목사님 밖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하고 누가 온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목사님은 사모님에게 "들어 오시라고 하세요." 말했습니다. 목사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어느 시골 할머니였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마침 계서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이거 변변찮지만 볶아 잡수세요." 할머니는 자루 안에서 씨암닭 한 마리를 내놓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할머니의 정성어린 봉사에 감사해서 "할머니 어디 사시는 누구십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얼굴에 기쁨에 찬 미소를 풍기며 "저는 목사님께서 집회 인도 하실 때마다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사를 하지만 목사님은 저를 모르시더군요." 하고 말하면서 경북 어느 지방에 사노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일이 있은 한달 후 대구에서 집회가 있었니다. 예배를 끝내고 내려오려니 여러사람 속에서 할머니 한 분이 공손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목사님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를 아시겠습니까?" 목사님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알구 말구요. 씨암닭 주신 할머니 아니십니까?" "아이구 아시는군요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한 목사가 그를 알아 주는데도 저렇게 기뻐하거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아 주시는것 기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지런히 기도 하십시다.
그리고 주님을 사모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그렇게 하여 주님께서 우리 어린이 여러분을 알아 보시고 칭찬하시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