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전-계시록

무엇이 변해야 하는가 2(행 27:9-26)

공 상희 2009. 3. 9. 16:30

무엇이 변해야 하는가 2(행 27:9-26)  

 

변화를꾀하는 일 가운데 한 가지가 크든 작든 구조를 조정하고 변경하는 일이다. 2월 19일자 조선경제에 “목숨 건 변신”이란 제목의 글이 실린 것을 보았다. 요즘 기업들이 기존상품을 접고 새 분야로 ‘주력사업’을 바꾸고 있고, 심지어 회사이름까지 바꾸는가 하면, 전통산업에서 첨단산업으로, 저부가 가치에서 고부가 가치에로, 생산위주에서 기술위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경제의생사가 걸린 이런 거대한 일들은 기업에서 결정하는 것이지,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작은 일 한 가지가 집안을 정리하는 것이다. 자리만 꿰차고 있지 필요치 않은 물건들을 내다버리는 것이다. 부족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야 운신의 폭도 넓어지고 꼭 필요한 것들로 채울 수가 있다. 

 

집안을정리하듯이 마음속이나 뇌신경세포 속의 기억들을 정리해야 한다. 충격적이고 해로운 기억들을 치워버리고, 이롭고 좋은 기억들로 채워야 한다. 생활습관도 정리해야 한다. 나쁜 습관들은 버리고, 기도하기, 찬양하기, 성경읽기, 음악 감상하기, 운동하기, 책읽기 등의 좋은 습관들을 길러야 한다. 좋은 생각은 생활습관을 바꾸고, 좋은 습관은 행동을 바꾸고, 좋은 행동은 인격을 바꾸고, 좋은 인격은 운명을 바꾼다.

 

버리는일에 비용이 들고 수고가 따른다. 버리는 일에 아픔이 따른다. 가난했던 때에 할부로 장만했던 책이나 전동타자기와 같은 한물간 물건들, 소중한 추억을 담고 있는 것들이어서 수십 년간 간직해 왔던 잡동사니들, 그러나 지금은 필요치 않아서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는 물건들, 그래서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아깝지만 내다버려야 공간이 확보된다. 살 때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버릴 때도 처리비용이 든다. 그래서 변화에는 금전적인 희생이 따른다. 저는 지난 2월 두주가 넘게 쓰지 않는 물건들과 상당한 책들을 내다버리고 책상의 재배치, 책꽂이 수리, 새로운 책꽂이 구입 등의 노력들을 통해서 공간 확보에 힘썼다. 특히 서재가 좁고 책꽂이가 부족해서 방바닥에 쌓여 있는 책들을 정리하고 필요치 않은 것들을 내다 버리는 일이 부득이한 일이었다. 집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내 삶의 구조를 조정하고 변경하는 것, 즉 내 인생에 변화를 꾀하는 것도 무언가를 과감하게 버리고, 꼭 필요한 것들로 채우는 것이었다. 

 

버리는일에 몸살이 따른다. 두 주간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고, 하지 않던 육체노동을 했기 때문에 온 몸이 쑤시고, 급기야는 몸살에 병까지 얻어서 지친 몸으로 만 24시간을 잠만 자기도 했고, 여러 날 가벼운 허리통증을 겪기도 하였다. 변화라는 것이 그냥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닌 게 분명하다. 내 삶에 버려야할 것은 없는지, 내 삶에 꼭 보충해야 할 것은 없는지, 내 삶에 재배치할 일은 없는지, 내 삶에 우선순위를 뒤바꿔야할 일은 없는지, 내 삶의 구조를 조정하고 변경해야할 일은 없는지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다소의 희생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줄일 것은 줄이고, 뺄 것은 빼서 내 삶을 가볍고 날씬하게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광풍의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사도행전27장을 보면, 바울을 태운 배가 10월 중순경 지중해에 불어 닥친 엄청난 북동풍을 만나 14일 동안 해도 달도 별도 없는 암흑 속에서 향방을 잃고 폭풍 중에서 표류한 것을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가이사랴)에서바울 일행을 태우고 터키(루기아)로 향하던 배는 서풍을 받으며 해안가를 따라 움직였고, 터키에서 이탈리아로 향할 배로 갈아 탄 다음에는 맞바람인 북서풍을 만나 힘들게 진행하였다. 따라서 예정했던 날들보다 많이 지체되었고, 더 이상의 항해는 위험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래서 안전한 항구로 피난하여 겨울이 끝날 때까지 11월부터 1월까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달한 항구인 미항은 겨울을 나기에 비좁은 곳이라, 바울의 충고를 무시하고, 그레데 섬의 뵈닉스 항구에서 겨울을 나기로 결정을 보았고, 때마침 불어온 남풍을 타고 기분 좋게 출발하였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서 남풍은 북동풍으로 돌변했고, 광풍과 성난 파도에 배는 중심을 잃고 요동쳤다. 

 

배를탄 사람들이 취한 행동들의 특징은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것이었다. 처음에는 바람이 워낙 세서 어찌해 볼 수 없었으므로 바람에 배를 내맡겼다(15절). 그러다가 바람막이가 되어준 가우다 섬을 지날 때에, 즉 기회가 주어졌을 때, 끌고 다니던 구명정을 바다에서 끌어올려 갑판에 단단히 묶는 일을 했다(16-17절). 셋째는 배가 북아프리카 쪽으로 밀려가 모래톱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갯바닥을 끌도록 만든 일종의 제동장치인 닻을 내리고, 돛을 내려서 갑판에 묶는 일을 하였다(17절). 네 번째로 둘째 날에는 짐을 바다에 풀어버렸고, 삼일 째 되는 날에는 배의 보조기구들, 특히 돛대를 내버렸다(18-19절).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다 힘을 합쳐서, 살아남기 위해, 소중한 물건들을 버리는 행동에 동참하였다. 이것은 한 때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겨지던 것들조차도 위기탈출을 위해서는 버려야할 순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내림과 버림은 승선한 자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지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게 될 가망성은 여전히 희박하였다(20절). 그 후로도 열흘이 넘게 광풍은 불어 닥쳤고, 14일 동안 불어 닥친 성난 바람으로 인해서 결국은 배까지 파도에 부셔졌으며, 목숨이외에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은 힘을 합해서 모든 것을 내리고 버렸고, 마침내 곡물까지 버린 후에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그들을 진정으로 살린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바울의 믿음이었다. 사실 배 안에 있던 267명 가운데 바울과 누가와 같은 그리스도인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희망의 끈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다. 이 믿음이 그들을 살렸다. 버릴 것은 버리더라도 믿음만은 지켜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믿음은운명을 바꾼다. 황소머리를 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서 한번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 속에 들어간 테세우스가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실타래 때문이었다. 그는 미궁에 들어갈 때 실 끝을 문설주에 묶어놓았고, 미궁을 헤매는 동안에도 끝까지 실 끝을 놓지 않았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풍은배 안의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버릴 것과 보존할 것을 구분하게 해주었다. 만일 우리에게 남은 생애가 한 달뿐이라면, 그 짧은 시간에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좋을 일들의 구분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일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진다는 뜻이다. 폭풍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는 먹고 입고 쓰는데 유용했던 물건이라도 전혀 무가치하게 여겨질 것이다. 오히려 평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구명조끼와 같은 것들이 최우선적으로 선택될 것이다. 믿음의 경우도 이와 같다. 믿음은 일상에 필요한 생필품처럼 먹고 입고 살아가는 데 그다지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 반대이다. 폭풍이 인생에 불어 닥쳐 난타를 당할 때면, 모든 것을 다 버려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은 보존하고 지켜야할 무한 가치로 여겨지게 된다. 

 

믿음은영혼에 견고한 닻을 갖게 한다. 14일째 밤낮을 바람과 폭풍에 쫓겨 다니던 배가 자정쯤이 되어 육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선원들이 배가 암초에 걸리지 않도록 닻 네 개를 내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27-29절). 때때로 우리의 삶에도 닻이 필요하다. 닻은 배를 바람과 파도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지탱시켜준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인생의 폭풍과 세파에 떠밀려가지 않도록 붙잡아줄 영혼의 닻이 필요하다. 바울은 이 영혼의 닻을 갖고 있었고, 극한의 상황에 몰려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23-24절을 보면, 하나님은 폭풍 중에 있는 바울에게 나타나셨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폭풍이 우리 인생에 몰아닥치고 험난한 파도 속에 혼자 버려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폭풍 속에서 욥에게 나타나셨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하라"(욥 38:1-3). 하나님의 이 음성을 듣고 난 욥은 힘과 용기를 얻어 새 출발하였고, 전에 가진 재산의 두 배를 모으는 거부가 되었다.

 

폭풍을만나 14일 동안 생사의 기로에서 죽음을 수없이 맛보았을 267명은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시련에 직면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련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련은 삶의 일부분이다. 누구도 면제받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가 없으면 해결책도 없다. 모든 문제는 해결되기 위해서 존재하고, 발전과 성숙의 계단을 오를 믿음을 길러준다. 

믿음은시련을 통해 단련 받는다. 한 소년이 나뭇가지에서 고치 하나를 발견했다. 고치가 꿈틀거린다 싶더니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용을 쓰는 것이었다. 불쌍해 보인 소년은 나비가 고생하지 않도록 주머니칼로 고치를 찢고 나비를 꺼내주었다. 그리고 나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날아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비는 움직이지 않았고, 몇 분 뒤에 죽고 말았다. 고치를 찢고 나와야 하는 고투가 사라지자 날개가 강해질 수 있는 기회도 없어진 것이다. 약한 날개로는 날수 없다.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고투해야 한다. 

 

우리의삶에 위기의 광풍이 밀어닥칠 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 가운데 한 가지는 과감하게 내릴 것을 내리고 버릴 것을 버려서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우리의 운명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