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신 능력 (고전1:18)
우리에게 주신 능력 (고전1:18)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능력이란 참으로 중요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 능력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우리 주님께서는 아직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겠습니까? 그리고 능력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예수님께서 식민지 치하에 허덕이는 민족적 숙원을 뒤로 하시고 그것은 너희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능력을 받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그 무엇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좋으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능력 있게 살 수 있도록 여러 능력의 길을 우리를 위해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럼, 그 예비하신 능력이 무엇일까요?
1. 십자가의 도가 능력입니다.
고전1:18에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습니다.
이 지상에 어떤 누구도 죄인을 의인 만드시고 구원 받을 수 없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만은 죄인을 의인 만들어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천국 가게 합니다. 세상에서 천국으로 멸망자에게서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자리로 옮기는 복음의 능력 얼마나 위대합니까?
사단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예수 복음에 선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롬1:16에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던 그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사랑이 능력입니다.
마5:44-45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슴이 사랑의 능력을 말씀하시는 구절입니다. 사랑이 얼마나 능력 있는 것이면 구제불능의 악인도 회개한다고 했을까요? 지존파를 전도했던 사랑의 교회 이재명 집사도 사랑이 그 무기였습니다.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그들도 두 손 들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말대로 우리 주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무력해 지지 않으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이유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힘이 있든지 없든지 결과나 효과를 생각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하셨습니다. 이 사랑으로만 무장하면 아무도 두렵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심지어 악인까지도 도와서 모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귀한 은사를 활용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은사가 능력입니다.
고전12:7-11에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은사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돕고 하나님의 사역을 돕고 그리고 우리의 각박한 세상살이를 돕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맨손으로 일하겠다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도구를 부정합니다. 이것은 마치 비행기나 포크레인 트랙터 망원경 현미경 등 온갖 문명의 이기를 부정하고 히피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부정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이 성령의 은사는 잠재해 있어요. 인정하고 기도하면 나타나게 됩니다.
4. 예수 이름이 능력입니다.
요14:14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셨습니다.
일천 번제를 드린 솔로몬에게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말하라 하셨듯 예수 이름은 우리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는 축복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행하시지 못하신 일은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믿고 나가면 우리에게도 주님이 역사해 주십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나면서 앉은 뱅이된 거지에게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하면서 손을 잡아 일으킬 때 걷는 기적도 예수 이름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만사를 운명이라고 체념하지 마시고 예수 이름으로 환경을 명령해 보시기 바랍니다. 손해 볼 것 무엇이 있습니까? 주저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마음의 풍랑도 잔잔해 지고 환경의 풍랑도 잔잔해 질줄 믿습니다. 나사로 같이 죽은 심령이 살아나고 악의 사단도 물러갈 줄 믿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다 주신 능력입니다.
5. 그런가 하면 우리의 약함도 능력입니다.
고후12:10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약할 때 더 겸손하게 되고 주님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낮추면 낮출수록 더 안전하고 주님을 의지하면 할수록 그만큼 강한 사람이 됩니다. 나무가 뿌리를 아래로 깊이 내릴수록 강풍에도 견디고 가뭄에도 견디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6. 마지막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면 자연의 품안이 곧 능력입니다.
롬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길인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응용해서 사세요.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을 떠나 살기 때문에 온갖 시험 가운데 있습니다. 노아 이전의 사람들은 보통 900세 전후를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자연환경이 그렇게 좋았던 것입니다. 가령 하늘에 윗물이 있어 태양의 방사선을 막아 주었고, 지구의 자력이 현재보다 몇 배로 강해 물리치료기가 따로 없었으며, 산소 음이온 피톤치드 등이 현재보다 몇 배로 많아 세포가 튼튼했을 뿐 아니라, 지구의 기후가 온화하여 질고도 없고,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각종 동식물들이 지금보다 몇 십 배나 많은 수천만종의 생명체들의 혜택을 보면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최대한 자연의 순리와 이치를 따라서 산다면 그것이 우리의 형통이요 건강이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베풀어 놓으신 귀한 능력을 외면하지 말고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능력, 사랑의 능력, 성령의 능력, 예수 이름의 능력, 겸손의 능력, 그리고 자연의 품안이 능력임을 깨닫고 가까이 하십시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가장 평탄하고 가장 큰일을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