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종류의 마음의 온도 (계3:14-22)
네 종류의 마음의 온도 (계3:14-22)
사람마다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있는 마음이지만 다 같은 마음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처럼 다양한 것은 없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마음에는 여러 가지의 온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에게는 약 네 종류 온도의 마음이 있습니다.
1. 찬 마음이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차지도 아니하고 -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에서 우리는 찬 마음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마음이 찬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겨울 강가의 찬바람처럼 냉정한 사람입니다. 인정사정 통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 곁에는 가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사울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사울은 자기의 목표를 위하여서는 사람들을 마구 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종 다윗을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제사장들이 다윗의 편을 들었다고 제사장 85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살고 있는 놉땅에 군사를 보내 가족까지 몰살시켰습니다(삼상 22;16-19). 이처럼 사울은 아주 찬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헤롯도 그런 사람입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2살 이하 어린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마 2;16). 그는 아내가 1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자식이라도 아내라도 죽였습니다. 이런 헤롯이 70세에 악질로 죽을 때 사람들이 좋아하기는 헤롯이 너무도 악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존경받는 이들을 강제로 체포하여 가두고 “내가 죽게 되면 우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니 내가 죽자 말자 이 사람들을 다 죽여라. 그러면 이들 가족이 울 것이다. 그러면 내 죽음 후에 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찬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차지는 않을지라도 사랑이 없는 사람이 바로 찬 사람입니다. 강도 만난 자를 피하여 지나가는 제사장 레위인과 같이 나만 살겠다고 나만 잘 되겠다고 남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바로 찬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원리원칙만 주장하고 법으로만 하려고 하는 사람도 찬 사람입니다. 우리는 바른 사람도 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사랑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사람의 마음에는 미지근한 마음이 있습니다.
16절에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라오디게아 교인들과 같은 마음이 미지근한 마음입니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생명 바쳐서는 하지 않습니다. 아합왕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여호와께 한 발 바알에게 한 발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그런 미지근한 사람이 지금도 상당히 많아요.
사도행전 20장에 바울이 말씀을 강론할 때 창가에 걸터앉아 있다가 떨어져 죽은 유두고의 모습처럼 창 안에 들어 온 것도 아니고 나간 것도 아니고, 더운 것도 아니고 찬 것도 아니고, 그런데 졸았다고 했으니 잔 것도 아니고 자지 않은 것도 아닌 사람이 바로 미지근한 사람입니다. 이 중간하기가 얼마나 괴롭습니까? 운전하면서도 느끼는 건데 졸음을 참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예배당도 중 2층에서 예배를 드리면 구경꾼이 될 때가 많습니다. 제가 1980년 세계복음화성회 때 여의도광장에서 찬양대석에 앉았는데 강단 뒤에 있으니 은혜가 되지 않더군요. 적당히 잡담하며 신앙 생활할 사람은 유두고 같은 자리가 제일 좋습니다.
이런 미지근한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에스겔이 본 소성강수는 흐르는 곳마다 땅과 물을 소성시키지만 한 가지 소성시키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겔47:11에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개벌과 진펄은 땅도 아니고 물도 아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 마음을 뜻합니다. 이런 미지근한 심령은 변화 받지 못한다는 교훈입니다. 마치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남도 못하게 방해만 놓는 사람입니다.
3. 사람의 마음에는 따뜻한 마음이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란 사랑의 마음입니다. 어떤 자매가 남편을 잃고 너무나 마음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한 성도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슬픔을 당하고 있는 그 자매에게 가서 듣기만 해도 따뜻하고 뜨거운 말만을 골라서 하였습니다. “태양, 양지쪽, 난로, 곤로, 온천, 싸우나, 숯가마, 목욕탕, 찜질방, 전기 담뇨, 적외선, 온돌방, 어머니 품안,,,” 물론 이야기이지만 이런 말을 한다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진정 따뜻한 말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안심시키고 긍정적인 말을 하여서 사람들을 포근하게 만들어 주는 말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입니다. 바울같은 사람입니다. 모세가 가데스 바아네에서 정탐군 12명을 보냈습니다. 10명의 정탐군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민14;13) 우리는 거기 가면 그들에게 잡혀 죽을 것이라고 불신의 말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2명의 정탐군은 “그들은 우리 밥이다.”(민14;8-9) 가서 여호와께서 주신 땅을 취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으로 말하고 일이 되게끔 하는 이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바울도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끌려갈 때 그 배가 유라굴로 풍랑 만나 다 죽어갈 때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행27;22-25) 이렇게 믿음과 용기와 안심을 주는 사람이 따뜻한 마음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안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다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사공들은 자기들만 살려고 도망치려는 싸늘한 사람이었습니다.
4. 사람의 마음에는 뜨거운 마음이 있습니다.
19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했습니다.
여기에 열심이 바로 뜨거운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큰일을 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날다가 땅에 떨어지면서까지 비행기에 대한 집념을 가졌기에 비행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런 뜨거운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이런 마음을 가져야 남이 하지 못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고 이런 마음만이 교회와 나라에 큰 유익을 줍니다.
그럼 어떻게 뜨거운 마음을 가질까요?
1. 뜨거운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눅24:32에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 하였습니다. 성경은 불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뜨겁게 말씀을 전하면 더욱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져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수님을 위해 생명 바쳐 전했습니다.
2. 마음이 뜨거운 사람들과 사귀어야 합니다.
불은 번지는 성질이 있어서 마음이 뜨거운 사람을 가까이 하면 같이 불타게 됩니다.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꾸 비판적인 사람과 사귀면 자신도 모르게 비판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잘 가려서 선한 일에 불붙은 사람들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3. 불같은 성령을 받으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어떤 부부가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떡국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부인이 한참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한 살 더 먹는 것이 그렇게 좋아요?” 그러나 남편이 “암 좋지. 주님 뵈올 날이 가까워 졌는데 그럼 좋지 안 좋아?”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떡국을 먹으면서 마음이 뜨겁습니다. 뜨거운 사람들이라야 무엇을 남깁니다. 마음이 뜨거운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남기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남겼습니다. 에디슨은 수많은 발명품들을 남기고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서 영원한 구원을 남기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시렵니까? 마음이 뜨거운 사람만이 무엇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마음이 따뜻하시고 뜨거우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또한 그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온도를 한 번 살펴보십시다. 따뜻하고 뜨겁습니까? 아니면 차갑고 미지근합니까? 우리 모두 말씀과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마음의 온도를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