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마귀의 시험을 이기자 (벧전5:5-11)
공 상희
2009. 2. 26. 15:18
마귀의 시험을 이기자 (벧전5:5-11) 지난 3000년 동안 이 지구상에는 무려 3,300여 차례의 전쟁이 있었고 무수한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거나 다치고 재산을 잃었습니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세계는 제 1차 2차 세계대전으로 수천만 명의 사상자가 나고 재산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공포 중에서 전쟁의 공포만큼 크고 처참한 공포가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이 죽고 죽이는 싸움의 총소리는 그쳤지만 더 무서운 전쟁이 영적세계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악한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성경에 ‘마귀’를 ‘사탄, 악령, 어두움의 권세와 세상 주관자, 악신, 바알세붑, 용, 옛뱀, 더러운 영, 거짓말하는 영’ 등 여러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이 자기 이름대로 역사하는 참으로 악한 자입니다. 이 시간도 마귀는 사람들을 미혹시켜 지옥 백성 되게 하려는데 온갖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이 이겨야 하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늘도 쓰러져 시험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계시다면 이 말씀으로 승리하시고 마귀가 물러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마귀의 시험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겸손할 때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벧전5:5-6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는 그들이 마귀의 시험에 들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겔서 28장에 보면 마귀는 본래 하나님 곁에 있던 천사장 루시퍼였습니다. 루시퍼는 가장 아름답고 능력과 지혜가 탁월한 존재로 지음 받았지만 그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나도 하나님처럼 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고 반역을 꾀하다가 천상에서 내쫓기고 말았습니다(사14:12-15). 그러므로 시험에 들면 자신을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교만은 없었는가? 비록 내 일일지라도 내가 하나님 자리에서 내 뜻대로 내 주권을 행사하지 않았는가? 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엎드린 겸손한 마음이 결여되지는 않았는가? 우리 주님의 십자가 겸손에 자기를 맞추어 보면 가장 쉽게 알 수 있어요. 가장 안전한 위치가 바로 겸손의 위치입니다. 마치 방공호와 같이 가장 안전하며 혹은 뿌리가 잘 박힌 나무와 같이 겸손하면 어떤 누구도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겸손한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장하셔서 결코 사단이 침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처럼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승리의 법은 없습니다. 2. 예수님을 주로 삼아 맡길 때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여기 주께서 권고하신다고 했는데 이는 돌아보신다는 뜻입니다. 여기 주라고 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란 주인으로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시험 드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삼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모셨기 때문에 결코 염려하고 근심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로 삼아 겸손할 때 하나님의 정권이 임하여 사단은 물러가고 천국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주로 삼아 안심하며 염려를 버리는 순간 강력한 축사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치 가나 혼인집에 예수님을 주로 삼아 순복할 때 기적이 일어남 같이 주님을 주로 삼아 안심할 때 주님이 일어나사 역사해 주십니다. 왜 주일성수하지 못합니까? 혹은 왜 정직하게 살지 못합니까? 왜 그런 시험에 들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때 농사도 지을 수 없고 무역도 할 수 없는 광야에서 무슨 방법으로 300만에 달하는 백성이 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애굽을 나온지 얼마 되지 못하여 가지고 나온 양식이 동이 났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잘되면 의기양양해서 뛰다가도 조금만 어려우면 절망하고 낙심하여 시험에 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듬직하게 믿어드리는 이 훈련에서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계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귀한 날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깨어 기도할 때 마귀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했는데 근신하라 깨어라는 말씀은 기도를 암시하는 용어입니다. 기도할 때 마귀를 이깁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해서 제자들이 피곤해서 졸며 잤습니다. 그 결과 대적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들이닥치자 모두 시험에 빠져 주님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호언장담했던 베드로조차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고 마귀를 물리칠 장사는 없습니다. 사람이 나빠서 죄짓는 것 아닙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덜 사랑해서 혼자 살겠다고 도망쳤습니까? 제자들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이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부모 처자 직장 등을 헌신짝처럼 내어버리고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신 주님을 따라 생사고락을 같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시험에 든 것은 피곤하다고 기도하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그런데 피곤하지도 않으면서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한 제자들이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앞에 놓고 귀신을 쫓아내지 못할 때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 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 생활에 힘쓰심으로 간악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대적할 때 마귀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9절에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했습니다. 야고보도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마귀를 이기려면 적극적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를 무서워하거나 달래면 더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무당 굿하는 집에는 굿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달래지 말고 강하게 맞서 대적하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단은 뒤로 물러가고 맙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는 이 좋은 무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악령에 사로잡혀 온갖 상처와 죄악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을 비난하기 앞서 우리는 기도하면서 속으로 그들 속에 있는 악한 영을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못 믿게 막는 불신의 악령은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저 속에 있는 불만불평의 악령은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저 속에 있는 미움과 파벌과 분쟁의 사단은 물러가라!” 혹은 “음란의 마귀는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마음의 상처 주고 원한을 품게 하는 악의 영은 물러가라!” “온갖 불행을 가져다주는 악의 영은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마음속으로 물리쳐도 됩니다. 그러면 사람과 환경이 놀랍게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와 귀신 추방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으로 임하므로 곧 성령 충만과 악령 추방의 관계로 생각해야 합니다. 악령을 추방할수록 성령이 충만해집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의 방법이나 악령 추방의 방법이나 그 방법이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유덕 상 악령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마음속으로 적극적으로 악령에 대하여 저항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리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이 바꾸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단이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을 죄짓게 만들 때 쓰는 지능적인 방법이 네 가지 있다고 합니다. 먼저는 다윗 이미지를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 왕을 보라, 그렇게 범죄 했지만 회개한 다음에 훌륭한 왕이 되지 않았느냐. 다윗 같은 왕도 간음죄를 지었는데 나 역시 죄 좀 지을 수 없겠는가?” 이건 사단의 소리입니다. 혹은 모세의 이미지입니다.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혈기가 있었다. 사람까지 죽였지만 그래도 위대한 사람이 되었지 않느냐” 혹은 베드로의 이미지를 가지고 나온답니다. “베드로를 보아라, 그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만 잤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성령 받은 다음에 큰일을 하지 않았느냐. 지금을 잘 때이다, 푹 쉬어라” 그리고 무서운 유혹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바울 이미지입니다. “바울의 메시지를 들어보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행위는 상관이 없다. 마음대로 살아라. 이미 구원을 받아놓은 것이다. 나는 구원받기로 이미 예정된 사람이니까 거꾸로 가건 말건 천당 가기로 정해졌다. 걱정 말아라” 이렇게 사단은 신학까지도 이용해서 잘못된 틈을 내려고 합니다. 이신득의 교리를 이렇게 교묘히 이용하는 사단 얼마나 교활합니까? 이런 틈을 하와처럼 몇 번만 용납하면 선악과는 벌써 우리 입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주님처럼 말씀에 서서 철저히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 주님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지만 온전히 이기셨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겸손한 마음, 믿는 마음, 기도의 생활,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모두 마귀 시험에서 온전히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