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막 1:16-20)

공 상희 2009. 2. 19. 15:02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막 1:16-20)

이 시간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일군 중에 가장 행복한 일군은 하나님이 쓰시는 일군입니다.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다는 것은 일군으로서는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부르셔서 한 시대를 책임지는 귀한 사명자로 쓰셨습니다. 하나님 일의 귀한 재목으로 쓰인 것입니다.

 

언젠가 조그만 나무가 하나 필요해서 산에 간 적이 있었는데 태풍이 지나간 뒤가 많은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넓은 산에서 제가 구하는 나무를 찾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맡길만한 일군을 찾고 계시지만 주님의 마음에 딱 맞는 제목감이 될 만한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기 전에 왜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을까요? 세상에는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이 많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다 이 유능한 사람이 사람이 생각나면 자르고 또 저 유능한 사람이 생각나면 또 자르고 또 자르셨을 것입니다. 일군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대통령이 해야 할 일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적당한 일군을 택하는 일일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명성 있는 훌륭하고 유능한 일군들을 다 제치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택해야 하셨기에 밤새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럼 과연 주님은 무엇을 보시고 제자들을 택하셨을까요?

1. 부족한 면을 보시고 택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말입니까? 어느 노총각 목사가 있었는데 결혼 대상자를 가장 못 생긴 사람으로 찾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가장 못 생겼다는 사람으로 선을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처녀가 자기 못 생긴 것을 반감시키려고 자기보다 더 못 생긴 여자를 친구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노총각 목사는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고 더 못 생긴 여자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삼으심도 그런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부족한 면을 보시고 택하셨습니다.

 

성경을 볼 때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은 꼭 세상적으로 위대한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가진 것 없고 학문 역시 없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어부였습니다. 그들이 세상적으로 유능했다면 부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지식이나 힘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26-29에도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려면 세상적인 것이 화려해도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알면 아무리 쓰임 받길 원해도 하나님께서는 쓰시지 않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2. 부지런했다는 것입니다.

16절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갈릴리 어부들은 밤에 나가서 고기를 잡습니다. 다른 사람들 곤히 잘 때 그들은 일어나 바다로 나갑니다. 갯벌에 나가 조개 캐시는 분들 어두운 새벽 엄동설한에도 기구를 짊어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을 봅니다. 보통 마음 갖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노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부지런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성경의 다른 곳을 봐도 모두 열심 있는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엘리사가 부름 받을 때도 왕상 19장을 보면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열심히 밭을 갈 때였습니다. 여호수아도 얼마나 모세의 수종을 들며 부지런했습니까? 출33:11을 보면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아모스도 뽕나무를 배양하던 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족함은 많을지라도 최소한 부지런은 해야 합니다.

주님은 충성된 종아 그렇게만 부르지 않았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게으른 종에게 악한 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게으름은 본질이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 일에는 부지런하면서 하나님의 일에는 그렇지 않는 사람, 자기 일도 하나님의 일도 함께 부지런 한 사람 여러분은 자기 일도 하나님의 일도 부지런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지런해야 하나님께서 이 한 시대 귀히 쓰시는 사람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3. 자기 꿈을 보리고 주님의 꿈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1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비전이란 꿈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그 비전을 품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비전을 품어야 쓰신다는 말씀입니다. 꿈이 없으면 자리만 차지하는 것이지 일군이 아닙니다. 고기잡는 기술로 부자 되기를 꿈꾸던 그 꿈을 버리고 주님이 주신 꿈을 비전 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비전을 주셨고, 여호수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안을 주신다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소금기둥과 같습니다. 자기도 가지 않고 남도 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 사람은 일군이 될 수 없고 일군이라면 모든 일을 스톱시킬 사람입니다. 갈렙과 같이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젊어야 합니다.

양적으로만 커야 큰일이 아닙니다. 사람 보기에는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 보시기에 큰일이면 큰일입니다. 우리 그리 크진 않지만 원수 마귀의 세력을 공략할 이 세상의 요새 중의 가장 강력한 영적 요새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겨울 강단에 엎드릴 때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전 교인이 엎드린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귀한 교회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비전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가장 작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2:6) 하셨습니다. 가장 작지 않다는 것은 꼴찌의 두 번째라는 뜻이 아니라 가장 크다는 뜻입니다. 비록 작고 보질 것 없어도 가장 귀한 일하는 교회 되어야겠다는 비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4. 말씀에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17-18절을 보니까 예수께서 부르실 때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았습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어떤 사람은 아비를 장사한 후에 따르겠다. 어떤 사람은 내 가족을 작별한 후에 따르겠다. 조건이 많았습니다. 조건이 많으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배와 그물과 부친까지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시명이란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귀하지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에 대한 언급이 없거나 생각나지 않거나 일감이 생기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순종할 자세만 갖추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하나님 오늘 내가 무엇을 할까요? 오늘 무슨 일을 시키시렵니까? 무엇이든지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이 자세를 가지고 하루를 사시기 바랍니다. 빈탕인 날이 많아도 그 자세는 변치 않아야 합니다. 나아가 찾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 자세에 철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쓰임 받는 길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세를 쓰시듯 우리를 쓰십니다. 그렇게 하면 알 것을 알게 하시고 만날 자를 만나게도 하시고 만날 자를 만나게 하십니다. 자세가 중요합니다. 먼저 나서면 안 됩니다. 주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고 순종의 자세를 철저히 갖추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이 자세가 잘 되었던 것입니다. 행22:10에 사울의 첫 기도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였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대한 사도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언제든지 주님께서 오시면 문을 열어 드리기 위해서 준비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재림 준비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준비입니다. 불순종한 사울과 순종한 다윗을 비교해 보세요. 삼하3:1을 보면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3:1) 했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 시키면 항상 시키는 것도 아닌데 못한다고 거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든 안 쓰시든 항상 순종하는 자세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항상 준비된 성도가 되세요.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찾아 쓰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을 때 택함을 받을만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부족을 아는 겸손한 사람이 됩시다. 맡겨 주신 일에 부지런한 사람이 됩시다. 작지만 큰일 할 수 있다는 비전 가진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언제든지 말씀에 순종할 자세를 가집시다. 그래서 제자들을 귀히 쓰심과 같이 이 한 시대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사랑하는 여전도회 회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