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오신 예수님 (마2:1-12)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새 왕이신 예수님을 모심에 대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즉 헤롯이 자기 기득권을 염려하여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듯 높아진 교만을 경계해야 하며, 제사장과 서기관들처럼 성경에 능통했지만 왕이 나셨을까 찾아보거나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형식적인 죽은 믿음을 경계해야 하며, 사관의 주인처럼 바빠서 아기 예수님이 자기 집 안에 나심조차 몰랐던 세상의 일에만 바빠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설교)
이 시간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는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어떤 신분으로 오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답으로 사람으로 제물로 구원자로 등등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메시야 즉 왕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왕의 신분은 헤롯왕이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던 것처럼 우리의 삶의 양식에 큰 의미와 변화를 던져 주는 사건입니다. 왜 오시되 왕으로 오셨습니까? 다스리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마치 벌통에 수만 마리의 벌들이 있지만 새로 왕대에서 생겨나는 그 벌에게 모두 다 벌들이 복종하고 충성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메시야로 세상에 오시되 우리에게 찾아오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의 양식에 큰 변화를 던져 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다스림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민주시대를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 보면 우리 마음은 예수님이 오시던 그 시대와 같이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자기 마음의 왕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던지 싫던지 그 왕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고 그 영향력 아래서 그를 섬기며 그의 지배를 받으며 그를 위하여 그를 즐겁게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아직 왕정이란 말입니다. 가령 돈이 나의 왕일수도 있고 취미가 혹은 나의 사랑하는 그 무엇이 혹은 나 자신이 나의 왕일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어야 하는데 다른 것이 왕이 되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두려워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했는데 그 현실이 각인의 심령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죠. 거룩한 마음의 성전에 왕이신 하나님은 없고 이런 악한 왕들만이 채워져 있으니 그래서 사람들에게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주실 새 왕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다른 왕들은 모두 척결하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경계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1.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 마음은 본문의 헤롯과 같은 마음입니다. 마2:13을 보면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을까요? 자기가 유대의 왕인데 유대인의 왕이 났다고 하니까 기득권을 빼앗길까봐서입니다. 헤롯은 천한 사람으로 왕이 될 수 없자 로마에 가서 온갖 선물과 아부로 왕권을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 즉 어떻게 해서 얻은 왕위인데 예수가 와서 그 자리를 빼앗는단 말입니까? 이것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진정 겸손했다면 예수님을 자기 왕으로 모시고 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요나단은 자기 원수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을 때는 양보하고 도리어 돕고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을 이어 왕이 될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심을 보고 그를 생명 걸고 도왔습니다. 돕다가 아버지 사울에게 미움 받았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이 겸손이 없이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왕좌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헤롯이 되어 지금 이 시간에도 자기 마음의 왕좌에 앉아 자행자지하며 헤롯이 두 살 아래 아이들을 죽이듯 주님을 위하는 생각들을 죽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부르지만 왕의 말씀에 소동하고 반항하고 무관심 하는 우리는 아니었는지 살펴보십니다. 우리 마음속의 헤롯을 척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형식적인 죽은 믿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당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서 봅니다. 그들은 성경에 정통하고 있었습니다. 4-6절에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척척박사입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당대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왕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날 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알았어도 왕께 경배하러 가지는 않음은 물론 과연 왕이 나셨을까 관심조차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교회에 다니나 형식적인 종교인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서기관들처럼 듣기는 들어 잘 알지만 예수님을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의 발이 없으며 성경은 알아도 예수님을 사랑할 마음의 가슴은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손도 발도 가슴도 없고 머리만 있는 비극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얼마나 더 알아야 손이 생기고 발이 생기고 가슴이 생기는 것입니까?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그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2주가 지나기 시작하면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할 머리와 손과 발과 가슴을 가지게 되는데 왜 수많은 날이 지났어도 왜 머리만 자랍니까? 이것을 가분수라고 하는데 최근 통계에 의하면 현대인들이 육체의 활동을 적게 하니 옛날보다 몸에 비해 머리가 더 크다고 합니다. 믿음도 그렇다면 그것은 야고보의 말대로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진정한 예배도 진정한 고백도 진정한 봉사도 진정한 섬김도 진정한 희생도 없고 앎에 그친다면 오히려 안다는 것이 나를 더 비극적이게 만듭니다. 차라리 성경을 모르는 것이 나을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식이 교만을 가져오는데 지식이 나쁜 것이 아니고 그냥 지식이 아니라 행함이 없는 지식이 그런 것입니다. 지방도 다 나쁜 것이 아니고 오메가 쓰리와 같은 좋은 지방은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쁜 지방은 혈관을 막고 큰 병을 불러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비판하고 남을 보고 스스로 시험 들어 쓰러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이 교회의 내막과 노회나 총회나 이런 것들을 너무 잘 알아도 감당치 못하여 스스로 시험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우리 속에 잠재해 있는 제사장과 서기관과 같은 행함 없는 믿음들을 척결하여 예수님을 진정한 자기 왕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 섬김보다 더 바쁘다면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여관 주인입니다. 눅2:7에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예수님은 사관 마굿간에 계셨으나 사관 주인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돈 버는데 바빴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호적하러 왔기에 그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관심 썼더라면 여관 빌려주고 구주 만났을 텐데 성경은 그를 구주를 만난 주인공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돈 버는 일을 누가 나무랍니까? 그러나 일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린 열심은 무모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과거보다 백 배 더 잘 살지만 한결같은 소리가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에 그렇게 바쁘고 시간이 없는지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에 바빠야지 세상일에만 바쁘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양손에 빈껍데기만 쥐어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에 바쁘시기를 바랍니다.
왕이 오십니다. 우리의 왕이 오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려고 다스려 주시려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죄와 사단과 저주에서 구해 주시려고 왕이 오십니다. 우리가 다스리려고 했으나 다스려지지 않던 것을 다스려 주시려고 왕이 오십니다. 나쁜 왕을 제거하고 참된 평화를 주기 위해서 왕이 오십니다. 그 왕은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 분만이 의와 평강의 왕이십니다. 오늘날 시대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때입니까? 베들레헴 마굿간에 왕이 오시듯 각인의 심령에 가정에 사회에 나라에 왕이 오셔야 합니다. 모두 겸손히 왕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때 그곳이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예수님을 왕으로 받들지 못했다면 헤롯의 교만과 서기관의 죽은 믿음과 사관 주인의 세상 것에 바쁜 마음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32:1-2에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땅에 시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아기 예수로 나신 예수님을 온전히 왕으로 모시고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