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설교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눅2:10-14 )

공 상희 2008. 12. 20. 11:03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눅2:10-14 )

이 시간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성탄절이 오면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하는데 그 뜻이 무엇일까요? Merry란 말은 ‘기쁜, 즐거운’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Christmas)란 말은 그리스도 미사라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예배하자 찬양하자’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귀한 날에 동방박사와 같이 목자들과 같이 하늘의 천군천사와도 같이 아기 예수님으로 오셨던 우리 주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되 얼마나 낮게 오셨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도 낮게 오신 것인데, 오시되 가장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의 집에 나시고, 또 나시되 나실 곳이 없어서 말구유에 나셨습니다. 이보다 더 낮게 오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우리를 섬기시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막10:45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몸을 입고 오시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사역은 성취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왕궁에서 나셨다면 섬김의 상징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 어떤 사람이 종이 되기 위해서 태어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나실 때부터 종이 되셔서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성자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시려 오셨다니 얼마나 황송합니까?
그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대야를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를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씻기라고 하셨습니다. 발만 씻기심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모든 구속사역과 일생이 모두 섬기는 생애였습니다.

2. 주님이 오신 것은 죄인을 부르시기 위해서입니다.

마9:13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귀한 의미를 던져 줍니다. 이 말씀은 사람 중에 의인도 있고 죄인도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를 스스로 의인이라 하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찾아오시지 않으신다는 교훈입니다. 대신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구원이 필요하고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이렇게 주님은 율법 아래서 정죄 받고 신음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갈4:4-5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시며 구원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누구든지 믿는 자는 다 용서해 주시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십니다.

3.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전도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막1:38에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셨습니다.
누구에게 전도하려면 그 사람과 흡사할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죄수였던 사람이 교도소 전도하면 제일 좋습니다. 군인이었던 사람이 군인들 전도하면 제일 좋고 경찰이었던 사람이 경찰 전도하면 가장 좋습니다.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을 전도하려면 과거 그러한 일을 겪었던 사람이 다가가서 전도할 때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선교전략에서 현지인 훈련이 중요합니다. 개미에게 말을 하려면 개미가 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사람이 되어 사람에게 전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신 말씀이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하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요10:10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를 영육 간에 행복하게 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 행복하게 못해주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잘 경외하세요. 하나님 잘 경외하는 사람은 그 풍성함을 누립니다.
그래서 예수 만나면 바꾸어집니다. 눅4:18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그랬습니다. 예수 잘 믿어 성령 충만하면 자유를 누립니다.

5.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히2:14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요일3:8에도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그랬습니다.
왜 마귀를 이시기려면 몸을 입어야 합니까? 그것은 아담의 실패를 반전시키셔서 사단에게 빼앗긴 모든 권리를 찾으시고 마귀를 없이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몸을 입으시고 일생 사단의 시험을 친히 받으시며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에 십자가에서까지 참으심으로 온전히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은 몸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몸이란 어떤 때는 거추장스럽고 시험을 몰고 오는 온갖 원인이기도 하지만 이 몸의 시험을 이기고 몸을 주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큰 축복의 상이 됩니다.

6. 죽음의 두려움을 물리치시고 부활의 약속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히2:15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누구든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을 그 공포까지도 대신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을 앞두고 고뇌하신 것을 보고 예수님이 그러실 수 있느냐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받을 공포까지도 다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공포가 없습니다. 도리어 저 나라를 사모합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1:23에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리고 마28:20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 세계 백성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절망에 빠진 우리 인간에게 소망을 주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십시다. 혹시 절망 가운데 계십니까? 비록 말구유와 같은 심령이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원한 소망을 얻습니다. 우리 모두 목자들처럼 동방의 박사들처럼 천군천사들처럼 주님을 기뻐하고 찬양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