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새벽기도

공 상희 2008. 11. 28. 17:23

새벽기도

본문 : 시57: 7-8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는 매일 아침 4시경에 일어나 가장 빠른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일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똑같은 곳까지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왕복 40리(약 16km)를 말을 타고 달리면서, 가는 길에는 전략을 짜고 돌아오는 길에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어지러운 전란 속에서도 늘 날카로운 예지와 결단을 보이면서 결국 패권을 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아침의 사색 덕분이었습니다. 이 말 위에서의 시간이야말로 노부나가를 가장 노부나가 답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말을 타기는 어려운 세상입니다. 대신 아침에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십시오. 아침부터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께 기도할 때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는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5:3)

성 프란체스코에 관한 일화입니다. 어느 비바람이 심하게 휘몰아치는 밤 누군가가 프란체스코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초라한 거지 한 사람이 비에 온몸이 젖은 채 벌벌 떨면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쾌히 그 거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거지는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지고 코가 문드러져 나간 나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개의하지 않고 음식을 대접하고 갈아입을 옷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거지는 프란체스코의 침대에 다가오더니 추워 죽겠으니 함께 잘 수 없겠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나환자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고름과 진물, 썩은 악취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지만 프란체스코는 오히려 그 거지를 자신의 두 팔로 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 거지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프란체스코가 눈을 떠보니 거지는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잠자리를 살펴보니 거지와 같이 잔 흔적조차 없고 오히려 방안은 깨끗하고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순간 프란체스코는 간밤에 누가 자신을 찾아왔었는지를 깨닫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5)

영국의 노예해방 운동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아들에게 새벽기도의 중요성에 관해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이 하나 있단다. 그것은 결코 아침기도를 무시하거나 짧게 해버리거나 성급하게 마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골방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하지 않도록 주의했으면 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보다 치명적인 것은 달리 없다. 만약 네가 아침부터 하나님과 친근한 교제를 하게 된다면, 너는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하나님께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노예해방을 지지하고 살아 있는 신앙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투사의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그런 행동 뒤에는 새벽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어떻게 시작하는가에 따라서 하루의 결과가 어떨 것인가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새벽을 여는 사람은 아침 햇살만큼이나 찬란한 은혜가 임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긴 밤의 고통과 기다림을 알기에 그는 밝아오는 새벽을 하나님과 함께 깨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108: 2)

종근당이라는 제약회사를 아실 것입니다. 이 회사는 이름이 종근당일 뿐 아니라 회사의 상징, 로고도 종입니다. 종이 회사의 상징입니다. 이 회사의 상징이 종이 된 데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서대문 영천 시장은 콩나물 장수 아줌마들이 많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중 신앙심 깊은 한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새벽마다 콩나물 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는 길에 꼭 교회에 들러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녀의 기도제목은 자식들을 믿음으로 성장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머니의 기도는 이루어졌고, 그녀는 아들들은 훌륭한 사람들로 성장했습니다. 그 아들 중 하나가 훗날 큰 제약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매일 새벽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던 일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의 자기와 자기의 모든 것이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어머니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늘 잊지 않고 살 수 없을까? 그러면서 새벽기도를 생각할 때 교회 종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옛날에는 교회마다 종을 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연상되도록 자신의 제약회사 심벌 마크를 '종(鍾)'으로 정한 것입니다. 종은 바로 새벽기도의 응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유태영 박사, 그는 1932년 전라북도 임실군 깊은 산골마을 머슴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논1평, 밭1평 없는 가난한 집에서 누나들이나 형들이 초등학교도 못 다녔던 것처럼 그도 학교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품팔이하며 살다가 동네어른들의 권유로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발이 없어 맨발로 학교를 다니고, 13살까지 팬티를 입어본 적이 없고, 요즘 같은 여름방학 때는 숙제할 노트를 못 사서 여기저기서 종이를 모아다 노트를 만들어 숙제를 해갔습니다. 이처럼 가난에 지쳐 머슴살이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어떻게 장래를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13년이 되기까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우박이 솟아지나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는 어렵게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서 1953년 전쟁직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 신문팔이, 신문배달, 아이스께끼 장사, 빨래비누 장사를 하며 야간고등학교와 야간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영양실조로 쓸어졌을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현재 겪는 이 고통은 하나님께서 장차 나를 쓰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감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계속 기도하면서 “유학을 가야겠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만을 가지고 그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무식 담대하게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 덴마크 왕실로부터 회신이 왔고, 그 후 덴마크에서 공부를 하였고, 후에 세계10대 대학이라는 히브리大에서 수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대에서 사회학 교수로 몇 년 동안 있다가 우리나라에 와서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영국의 복음주의 순회선교사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 때문에 치러야 할 불편을 생각지 마라. 하나님은 당신을 기도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든지 새벽예배는 주일예배보다 출석인원이 적기 마련입니다. 성도는 결코 주일 아침에만 성도인 것은 아닌데 실제의 삶에서 많은 성도들이 주일아침에만 성도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새벽기도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전에 이 땅의 것들을 보지 않겠다는 결단이요, 매일 아침 하나님의 제단에 자신의 음성과 마음의 첫 열매를 바치겠다는 헌신입니다. 새벽기도는 단순한 기도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더불어 하루를 시작하여 그 하루를 은혜의 날로 만들려는 거룩한 시도인 것입니다. 세상이 다 잠들어 있는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새벽은 기도하고자 하는 성도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 "(시46: 5)

1517년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문에 95개조항의 「개혁선언문」을 붙여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평범했던 그가 어떻게 절대권력의 교황의 세력과 맞설 수 있었을까. 루터는 그것이 기도라고 말합니다.
『만일 내가 새벽에 두 시간 이상을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나에게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세 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 기도가 모든 일을 지탱해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어떤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에노(Eno)박사라는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자신이 젊은 시절 캐나다의 젊은 교회 목회자였을 때 어떤 식으로 새벽기도를 드렸는지 우리에게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는 병아리 목회자로서 사역을 막 시작하는 중이었고, 캐나다의 폭설과 혹한에 적응하기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교인들의 수는 매우 적었고, 교회의 상황도 열악했습니다. 그러나 에노 교수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양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경건한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가 머물던 작은 집은 새벽녘의 살을 에는 추위로 꽁꽁 얼어붙었고, 집안의 유일한 난방기구는 나무를 집어넣어야 하는 조리용 오븐밖에 없었습니다. 에노 교수는 장작에 불을 붙인 다음, 얼음장 같이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 다음 따스한 온기 속에서 입술을 녹여가며 기도하기 위해 오븐 속에 머리를 집어넣었습니다.
교수님이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목회자 후보생이던 우리는 깔깔 웃어댔습니다. 너무 우스꽝스런 모습이 아닙니까? 젊은 목사가 오븐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있다니!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차마 웃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내 삶과 사역에 하나님의 힘과 지혜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노 교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기도를 최우선순위로 삼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여러분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실로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책도 많이 읽고, 강의도 빠짐없이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위험에 처할 경우, 매일 아침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준비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을 당신 인생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시88:13)

새벽기도회 인도하기가 무척 싫은 어떤 목사가 할 수 없어서 시간을 때우는 정도로 인도했습니다. 새벽기도회 참여하는 교인 수가 점점 줄더니 나중에는 어떤 할머니 한 분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비오는 날 나와보니 그 할머니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 목사는
"도대체 어떤 놈이 새벽기도회 제도를 만들어 놓았담?" 하고 성경을 내 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내려오는데 무엇이 그의 뒷통수를 때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내던진 성경을 펼쳐진 곳을 보니 성경 구절에 시선이 가서 자세히 보니 "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그는 회개하고 또 회개해 새벽기도회를 잘 인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6)

이차 대전 중에 자기 병영 가까이 있는 숲에서 몰래 기어가던 한 영국 병사가 붙잡혔습니다. 그는 즉시 군 상관에게 이첩되었으며 적과 소통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그가 주장한 한 마디 말은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장교가 물었읍니다. "기도하는 습관이 있는가?" "네, 그렇습니다"하고 병사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해 봐!"하고 장교가 명령하자 병사는 곧 무릎을 꿇고 기도 중에 그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 놓았읍니다. 그가 기도를 끝냈을 때 장교는 "가도 좋다. 네 말을 믿을 수 있어. 자주 기도를 해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잘 하지 못할테니까 말야"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쫓아 새벽마다 기도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아침마다 일어나자 마자 기도하십시오.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성도의 기도는 독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으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준비 없이 맞이하는 자가 아니라 기도로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시고 진로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운명을 결정합니다. 기도한 대로 됩니다. 기도를 안 했으면 안 한 대로 되고, 기도했으면 기도한 대로 됩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우리 모든 삶의 표본이 되는 것은 삶의 표본이 되는 기도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로부터 소리 있어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늘이 열리는 기도였습니다. 보통 기도는 땅이 열립니다. 대학문이 열리고, 사업의 문이 열리고, 직장 문이 열리고, 가정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는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 현전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삼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십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함께 어우러지는 기도, 이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였으며 요단강에서 이루어진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삼위일체적 사건이 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를 부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끝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을 동시에 만나는 사건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 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시116:1-2)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선교에 일생을 바친 영국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어떻게 일생을 사역자로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 행복한 비결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제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악기를 조율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겠지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과 맞추는 일부터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보람있지요』
새벽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을 일치시키는 시간으로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항상 기도로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