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열정을 가져라
미치도록 열정을 가져라
본문: 사도행전 26: 24-32
농구의 여왕 박신자 양을 아시지요 박신자 양은 국제 농구 시합에서 최우수상을 탔습니다. 그가 경기에서 이겨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열렬하게 환영을 하였습니다. 어린 학생 중에는, "나도 박신자 언니처럼 훌륭한 농구 선수가 될테야"하고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박신자 양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신문기자들과 방송기자들이 한 마디씩 부탁을 하였습니다. 어느 잡지 기자가 말했습니다. "후배와 농구 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나, 좋은 도움이 될 말을 한 마디 해주세요. 특히 성공의 비결을 말씀해 주세요" 그 때 박신자 양은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미치는 거예요. 무엇에나 한 가지 일에만 미치는 거예요. 이것이 성공의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간단한 말이지만 참으로 유명한 말입니다. 한 가지 일에 미친 사람처럼 열심을 내면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씨가 전에 아프리카에 갔을 때, 슈바이쳐 박사를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김찬삼 씨는 물었습니다. "박사님, 성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때 슈바이쳐 박사는 조용히 대답해 주었습니다. "한 우물을 파게" 한 가지의 일에만 몰두하는 일이 성공의 비결이라 하였습니다. 신앙이든, 교육이든, 사업이든 한 가지 일에 미친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김길창 목사가 처음 전도사로 파송 받아 경남 지역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때의 일입니다. 한번은 창녕 어느 지방으로 혼자서 전도하러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루종일 전도하고 밤이 되어 작은 주막집을 찾아 유숙을 청했습니다. 방에든 그는 그 밤에도 피곤을 모르고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따라 따라 예수 따라 가네. 아무 데나 예수 따라 가겠네. 전도 전도 예수 전도하세. 아무 데나 예수도 전하겠네"
이 소리를 들은 주인 아주머니는 혀를 차면서 "아까운 사람이 미치다니, 생기기도 잘 생겼구먼"하자 그 남편도 "누가 아니래. 제 부모가 얼마나 간장이 타겠소?" 하였습니다. 주인 내외의 대화를 들으며 잠이 든 김길창이 이튿날 아침을 먹고 나오면서 "잘 자고 갑니다. 주인 내외분께서도 함께 예수를 믿고 복 받읍시다"하면서, 구세론책 1권과 쪽 복음책 2권을 숙박료와 함께 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 사람아, 자네같이 미친 사람에게 숙박료를 어찌 받겠나? 불쌍한 것, 쯧쯧"하면서 숙박료를 연신 사양하였습니다.
스포츠, 음악, 예술, 학문 등 어느 분야에서든 진정한 성공자들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열정을 가지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최선을 다해야 길이 열립니다. 대충대충 하면 열렸던 길도 닫힙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아주 열심히, 그것도 즐겁게, 기쁜 마음으로 하면 결과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이미 성공의 길에 올라선 셈입니다.
알프레드 크랩스는 말하기를 “열정 없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승리하는 생활을 하는 비결은 가슴을 열정으로 가득 채우는 데 있는 것입니다. 열정이야말로 온갖 장애와 싸우게 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인생의 순간 순간을 즐기게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 최고의 동기 부여 전문가 중 한 명인 팻 윌리엄스가는 그의 책에서 마이클 조던을 ‘농구의 신’으로, 그리고 ‘20세기를 빛낸 영웅’으로 우뚝 서게 한 그의 모든 특성들을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그는 조던의 현란한 플레이와 농구 기술, 체력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화려한 재능 이면에 숨어 있는 조던의 피나는 노력, ‘지금 여기에’ 100% 몰입하는 집중력, 열정 집념 승부근성 등을 꼽았다. 한번은 농구 캠프에서 한 참석자가 조던에게 물었습니다.
“어렸을 때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했나요?” 그러자 조던은 “시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어요. 시계를 본 적도 없어요. 지칠 때까지, 아니면 어머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연습했거든요.” 한마디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그를 농구의 천재로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정이란 뜻은 무엇인가. 열정(Enthusiasm)이란 단어의 뿌리는 ‘들어오다(en)와 신(theos)’이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인투지아즘(Enthusiam)’ 즉, ‘열정’이란 뜻은 라틴어의 ‘주안에 있다’에서 파생된 말로 열정적인 삶은 주안에 있을 때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열정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열심 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기 원하는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 안에서의 열정과 열심을 갖고 있을 때 그러한 삶은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7)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12:11)
열정은 사람에게 꿈을 꾸게 합니다. 계획을 세우게 만듭니다. 이루어내게 도와줍니다. 열정 없이는 아무리 위대한 비전, 거대한 꿈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영혼의 불꽃처럼 안에서 타오르는 에너지, 그 무한대의 힘이 열정입니다. 열심과 열정적인 삶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할 때 생기는 것이며 제자의 삶을 살기 원하는 크리스천에게 열정적인 삶은 기본 조건입니다. 그런데 열정의 가장 무서운 적(敵)은 태만과 자포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
'난로 속의 불' 이란 책이 있습니다. 난로라는 틀은 있는데 그 속에 불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틀만 가지고서는 도무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난로 속에 불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의 심령도 불이 붙은 열심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나에게 12명의 열심있는 신앙인을 달라. 그리고 나를 어느 지역이든지 내려놓아라.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즐거이 일 할 것이다. 마음에 열심이 없는 사람 전체를 나에게 주어본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외쳤습니다. 열심이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열심이 있는 사람까지 싸늘하게 만드는 방해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열정을 가지고 복음에 미쳐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가 무엇엔가 미쳐서 살아갑니다. 돈에 미쳐서, 명예, 권세에 미쳐서, 스포츠에 미쳐서, 예술에 미쳐서, 즉 자신의 사는 영역에서 미친것도 모른 체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오히려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분야이든 그 시대에 부와 명예와 권세와 최고의 실력자가 되어 있다 할지라도 세월이 흘러가면 자연적으로 잊혀지게 됩니다. 만일 아무것에도 미쳐있지 않다면 그는 무능한 자 일 것입니다.
당신이 어느 한 방면에 최고가 되기를 원한다면 미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수년 내에 최고의 자리에 있게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성도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미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원수의 밥이 되어서 언제나 어둠 속을 살아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은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손에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나님 왕국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미쳐서 살아가야 하는가?
1. 하나님께 미쳐야 합니다.
어느 날 줄리어스의 꿈에 어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가에 대해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손님이 줄리어스에게 열심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줄리어스는 서슴지 아니하고 자기 품에서 열심덩어리를 꺼내 그에게 주었습니다. 줄리어스의 열심덩어리를 받은 손님은 지니고 다니던 저울에 그것을 달아보더니 “100근이군요”라고 했습니다. 줄리어스는 내심 너무나 기뻤습니다. “내 열심이 100근이나 되다니…”
그런데 손님은 열심덩어리의 구성 분자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덩어리를 세세히 분석한 후 그가 말했습니다.
“야심이 20%, 의심이 19%, 명예심이 30%, 기타 28%,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단 3%도 안 되는군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하나님께 대한 미치도록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대하 1:6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솔로몬이 왕이 되어 저 유명한 일천번제를 드린 사건에 관한 말씀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자마자 신하들을 이끌고 여호와의 회막 앞으로 나가 제사 드리는 일부터 했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드린 번제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일천 희생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한 번의 번제는 하나의 제물이면 족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천 마리의 제물을 드린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천 번의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의 번제에 제물을 천 마리를 바쳤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기록이 없어서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유추해 보면 제단이 여러 개 있어서 동시에 제물을 불태울 수 있는 형편은 못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마리씩 불 태웠다면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요? 하루에 30마리를 태웠다고 해도 한 달은 넘어 걸렸을 것입니다. 왕이 만사 제쳐놓고 제사 드리는 데 이렇게 여러 날을 보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솔로몬의 하나님께 대한 열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제사장이나 종교지도자들의 청이 있어서 한 일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그가 자원해서 결정한 일입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대해 불붙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렘 29:1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되 전심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죽기 살기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천사가 환도 뼈를 부러뜨려도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7번이나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열정으로 불 붙어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기도하는 일에 생명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크게 쓰십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정이 불타기를 바랍니다.
2. 기도에 미쳐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권면하기를 '항상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항상 기도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그것은 언제나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나 내 곁에 계셔서 나와 함께 계신다면 항상 기도하는 데는 결코 문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 큰 문제는 주님이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셔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자신은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고 착각하는 성도들이 많다고 하는 점입니다. 당신은 구하는 것마다 응답 받고 있습니까? 만일 응답이 없다면 이러한 부류에 속한 자입니다. 당신이 마음을 열고 기도한다면 성령께서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한동안은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던 육신의 소욕들이 성령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하게 될 것입니다. 음란, 쾌락, 각종 오락 등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것보다 더 기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 가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세상의 향락을 다 즐겨보았던 솔로몬이 '헛되다' 라고 한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령에 사로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야말로 구하는 것마다 얻고, 언제나 응답 받고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기도하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곁을 결코 떠나시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기도의 열심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서 기도생활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늘 충만히 경험하기 위하여 기도생활은 필수적입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호흡입니다.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는 사람이 없듯이 기도도 한꺼번에 몰아서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생활의 향기가 들어있어야 합니다. 또 기도는 전쟁입니다. 내가 원할 때 뿐 아니라 원하지 않을 때도 전쟁을 수행해야 하듯 기도는 하고 싶을 때는 물론이고 하기 싫을 때는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자기와 더불어 싸워 이기는 사람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허락하신 가정마다 사랑의 열심, 기도의 열심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말씀에 미쳐야 합니다.
다윗은 말씀을 가르쳐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 고 했습니다. 세상은 말씀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지혜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을 통해서만 깨달아 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을 깨닫는 지혜를 얻기 위해 새벽마다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말씀을 의지하여 요단을 가르고 가나안을 점령했습니다. 말씀은 당신에게 위로와 평안과 승리를 안겨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게 얻어지리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말씀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 즉 미쳐야 만이 나에게 주어지는 말씀이 되어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전도에 미쳐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도 체면이나 자존심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만일 내세웠다면 하나님은 그를 쓰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왕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전도했고, 병든 자, 장사꾼, 지식인, 가난한 자, 심지어 죄수들에게까지 가리지 않고 만나는 이들마다 가리지 않고 전도했습니다. 전도는 주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이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소원하는 일일 것입니다. 전도는 결코 아름아운 말로나 지식으로, 미모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복은 전하는 일에는 반드시 핍박이 뒤를 따라 다니기 때문입니다. 미친 자는 여건에 관계없이 취해 사는 자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주변의 여건에 관계없이 오직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전하는 일을 계속해야만 할 것입니다.
5. 맡은 바 사명에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사명을 받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한 달란트 받았거나 두 달란트 받았거나 다섯 달란트 받았거나 모두가 다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달란트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사명 받은 사람들입니다.
행 20:23-24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그 어떤 어려움, 그것이 죽는 일이라고 해도 물러서지 않고 헌신하겠다고 결단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에 대한 바울의 그 열정입니다.
에 4:14 이하를 보면 에스더가 외삼촌 모르드개의 말씀을 듣고 자기의 사명을 깨닫습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자기가 왕에게 나아가 자초지종을 고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이에 에스더가 비장한 각오를 전합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에 대한 에스더의 그 열정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영적 지도자 존 낙스는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겠나이다” 미국의 저 유명한 부흥전도자 화이트필드는 이렇게 외쳤답니다. “나에게 영혼을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 영혼을 가져가시옵소서.” 맡겨주신 사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토하는 사자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 열정으로 죽음도 무릎 쓰고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이런 열정 때문에 역사가 변합니다. 이런 열정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이런 열정 때문에 교회가 부흥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명에 대한 열정이 불붙게 되기를 바랍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한가합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열정이 있는 사람은 일할 시간을 만들고 환경을 조성합니다. 평생 사명은 열정을 일으키며, 열정은 평생 사명을 달성하게 해줍니다. 사명자의 마음이 열정으로 타오를 때 하나님은 그것을 성취의 동력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도 열정의 하나님이십니다. 온 천하와 우주는 하나님의 열정의 산물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뜨거운 구원의 열정입니다. 성령도 불처럼 역사합니다. 성령은 비전의 영이요 열정의 영이십니다. 평생 사명은 열정과 희망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 위대한 일을 계획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열정의 사명자가 될 수 있습니다. 초점이 맞추어진 빛은 놀라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초점이 흩어진 빛은 힘을 쓸 수 없습니다. 맑은 날, 돋보기로 태양 빛을 한군데 집중시키면 종이를 태울 수 없습니다. 초점이 안 맞는 안경을 낀 사람은 시야가 어지러워 제대로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초점이 분명한 안경을 끼면 똑바로 걸을 수 있습니다. 초점이 맞추어지면 이탈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는 큰힘을 얻는 것입니다. 사명은 해야 할 일들의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몰랑 퀴볼러는 말했습니다. "길은 많다. 그러나 그 많은 길을 다 가보기에는 생이 너무 짧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하도록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시간도,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에 집중하기를 원하십니다
6. 봉사에 미쳐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내려갔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헌신적으로 바울을 도와서 음란하고 부패된 도시에 복음의 물결이 일게 하는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교회는 희생하는 자가 없이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일구어 낼 수 없습니다. 오늘의 부패된 세상을 교회가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봉사자들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은사). 물질 등을 이용한 그 이상의 결실이 있기 위해 열심히 뛰십시요.
학생들이 공부에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사업하는 분들도 사업에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일이든지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열왕기 상 19장 9- 14절에 보면 열정의 사람 엘리야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자기 혼자입니다. 도저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 자기 앞에 놓인 대적을 물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을 때 여전히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비록 내가 도망치고 있고, 지치고 영적 침체에 빠져 있지만 아직도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붙잡으셔서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다시 그는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정이 있더라도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열정이 있더라도 앞 뒤 좌우 길이 막혀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고 그래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열정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그 불이 다시 일어날 불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불씨가 있어야 거기에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불씨를 쓰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용광로처럼 항상 불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식으면 우리 인생에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꺼지면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파산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미치도록 열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정,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봉사와 사명에 대해 미치도록 열정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