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말씀◎

축복의 통로

공 상희 2008. 10. 24. 17:44

창세기 22장 1∼13절

열왕기상 17장 8∼16절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은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십계명의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험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습니까? 그는 순종의 발걸음으로 이성의 경계선을 넘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이삭 대신 대속물로 숫양을 내주셨습니다.

이성과 믿음의 다른 점은 이성은 한계가 있으나, 믿음은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믿게 되면 모든 제도나 법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의심하고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약속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법을 초월해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어떤 제도나 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발자국이 이성의 경계선 밖으로 내디딜 때 그곳은 낭떠러지가 아니라 가장 안전한 축복의 땅이 됩니다.

엘리야 시대 때 과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그릿 시내가에 숨어 있던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붓집으로 가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곳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청산과부의 집이었습니다. 그를 과붓집으로 가라는 명령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잠시 후 엘리야는 떡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때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양식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아들과 함께 죽으려고 하는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이 와서는 그 남은 가루로 떡을 만들어 자기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아멘”으로 순종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대서사시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들을 죽여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의 순종이나 아들과 함께 죽기 직전 하나님의 종을 섬긴 사르밧 과부의 순종은 눈물의 대서사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두 사람에게 눈물을 씻어 주셨으며 최초로 하나의 축복의 통로를 만들어 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들도 살고 복의 근원이 되었고, 사르밧 과부도 아들도 살고 그 집에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올해 경제가 만많치 않다고들 합니다. 지금도 물가가 보통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축될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마르지 않는 축복의 통로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