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 시험을 이기는 지혜 (행 16:16-40)
마귀 시험을 이기는 지혜 (행 16:16-40)
이 시간에 “마귀 시험을 이기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할 것 중의 하나는 마귀의 시험입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면 우리 삶에 승리는 물론 이겨서 얻는 전리품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전리품이라 해서 마귀에게서 얻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이길 때 하나님께서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주심을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싸움하는 성도에게 값진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좋은 일을 앞두고 마귀의 시험이 먼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기고 끝까지 전진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임하게 됩니다. 사자성어에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지요? 좋은 일일수록 방해되는 것이 많다는 말입니다. 우리 믿음생활에도 마귀의 시험이 있습니다. 바울의 일행이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를 앞두고 시험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을 믿음으로 이겼을 때 바울과 실라가 놓임을 받고 간수와 그 권속이 구원을 받고 상관들이 무릎을 끓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럼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이길까요?
1. 기도로 이겨야 합니다.
16절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이 구절에서 바울의 일행은 기도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도의 누적이 있었기에 마귀의 시험을 당당하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여기 "우리"라고 했습니다. 혼자 기도도 좋지만 이렇게 합심하여 기도하면 사단의 진이 무너집니다. 다니엘 10장을 보면 다니엘이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방국가의 운명을 바꾸는 것을 봅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1993년 454명이 살해됨으로써 미국의 살해수도라고 불린 적이 있었습다. 그러나 6년후 워싱턴의 범죄율은 폭력범죄율이 60%까지 떨어졌고 1993년에는 절반으로 강도는 70%나 감소되었고 강간도 40%나 줄었습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일어난 기도운동 덕분이었습니다. 이 기도운동은 1997년 연중무휴로 지속되었는데 6천 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주 최근의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과테말라 알모롱가라는 인구 2만명의 작은 도시에 마리아노 목사의 목숨 건 중보기도로 인해 돌세례를 퍼부었던 깡패들이 모두 변화되어 지역 목사들이 되었고 마을사람 90%가 복음화되었으며 4개의 감옥처는 폐쇄되었고 술집의 90%가 사라지고 우상의 도시 알모롱가는 가장 깨끗하고 행복하고 부유하고 풍성한 도시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과테말라 사람들은 알모롱가를 ‘교회의 도시’라는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최근 우리 한국교회에 대한 염려가 큽니다. 안팎으로 짓밟히고 수효가 줄어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교회가 날로 냉랭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대한 문제는 한국교회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본을 보여준 기도운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벽기도든 저녁기도든 기도하는 젊은이를 보기 어렵습니다. 요즘 어느 유명 연예인의 자살 사건을 접하면서 그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라는데 슬픔이 큽니다. 이제는 각성하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2. 분별함으로 이겨야 합니다.
16-17절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의 일행을 따라다니며 외치는 장면입니다.
얼마나 귀에 듣기 좋은 말입니까?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 말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틀린 부분 있나요?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막으려는 마귀의 무서운 흉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틀린 부분이 발견됩니다. 즉 하나님보다 사람을 높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고 영광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영광 받고 칭찬 받으면 하나님의 임재는 사라지고 그 역사는 그치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귀신이 복음운동을 돕고 있으니 잠시 즐기거나 허용하려 했다면 바울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고 선교사역은 실패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금 부흥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온갖 세속적인 방법들이 도입되고 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날로 능력을 상실해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에 막강한 권력을 가진 모세의 탁월한 세속적 능력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럴듯한 마귀의 세 가지 제안을 물리치셨습니다. 마귀의 제안대로 하면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몰려들 것 같지만 그것은 빈 껍데기요 그렇게 되면 구속사역의 실패일 뿐입니다.
이번 방송사가 주관한 찬양행사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놀라운 은혜가 임하지만 찬송하는 가수에게 환호하고 열광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떠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높일 때 그토록 역사하던 성령께서 내 흥겨움이 빠지는 순간 소멸되는 것을 봅니다. 철저히 예수님만 나타나고 사람은 감추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교주를 더 신봉하고 심지어 자기를 예수요 보혜사요 하나님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요즘 틈새산업이 있듯이 이단들도 예수님과 인간 사이에 자기 자리를 틀려는 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딤전4:1에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갈 자는 이런 적그리스도라고 믿습니다. 진리를 떠나 속이는 자나 속임을 받은 자나 큰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귀신의 소리를 분별할 줄 알았습니다. 육신의 귀로는 달콤한 소리였고 복음전도에 순풍의 돛을 단 것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영혼으로 느껴지는 지각은 심히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했습니다.
영분별의 은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분별하고 영적지각을 사용하여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하지 마세요. 우리 영혼 속에서 성령께서 아니라 하실 때는 피해야 합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은사적으로 실상을 보여주십니다. 지금 창궐해 있는 이 귀신의 역사를 철저히 분별하여 신본주의의 참된 복음운동으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3. 혈기로 대항치 않아야 합니다.
19-21절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하면서 고소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었습니다. 선한 일을 했는데 결과는 반대였으니 말입니다. 16절에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한 것처럼 이 여종 한 사람을 통해서 여러 사람들이 돈을 벌되 큰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귀신에 크게 들려 큰 무당이 되면 전국에서 모여듭니다. 그래서 크게 귀신에 들리면 돈 방석에 앉게 됩니다. 결국은 자기 죽을 일이지만 우선은 돈이 들어옵니다. 이처럼 큰 이권이 그 여종에게 걸려 있었습니다. 점치는 여종은 시험의 뇌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으니 그 주인들이 격노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 고쳐진 것은 생각하지 않고 돈 벌지 못하는 것만 생각한 비인간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잡아 저자 즉 중앙광장으로 끌고 가서 소동을 부리고 풍속죄로 고소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당시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 퇴거령을 내린 때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활동은 활동 자체가 위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로마법에는 각 민족들이 자기 신을 섬기는 것은 허용이 되었으나 타민족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신속히 처리한 이면에는 빌립보의 통치자들이 여종의 주인들의 환심을 사 돈을 받아낼 목적도 있었음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종의 주인들은 이런 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바울과 실라를 고소한 것입니다. 그래서 옷 벗기고 매로 쳐서 피가 흥건한 상태에서 지하 감옥에 차꼬까지 채워 가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육신의 혈기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고전15:31-32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했습니다. 맹수란 무엇일까요? 바로 핍박하는 악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시57:4에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한 말씀과 같습니다. 마귀의 시험이 강해도 혈기로 싸우지 마세요. 혈기로 싸우면 집니다.
4. 믿음에 굳세게 서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혈기로 대항치 않는 대신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25-26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기도하고 찬송했더니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 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릴 정도면 어느 정도 강도일까요? 그러나 죄수의 손에 매인 것이 풀린 것을 보아 단순한 지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놀라운 이적이 동시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밤중쯤 될 때였습니다. 가장 밤이 깊을 때입니다. 당시 옥은 지하 굴이기 때문에 습하고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밤중이었으니 얼마나 어둡겠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처한 상황도 밤중이었습니다. 몸은 아픕니다. 발은 차꼬에 채여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배도 고픕니다. 풀려날 기약도 없습니다. 어디다 항변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모두에게 들릴 만큼 힘차게 찬송했습니다. 믿는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는 곳이 어디입니까?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또 예수 안에서 이미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가 단순한 기도 찬송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승리를 생각하며 노래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후에 더 큰 결과가 올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칠흑 같은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알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어떤 상황이 와도 도우실 것을 믿고 감사하고 찬송하게 됩니다.
홍해가 가로놓였어도 “믿습니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큰 산이 앞을 막아도 “믿습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먹이시기 입히시고 보호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여, 믿습니다.”라는 고백은 기적을 일으키는 고백입니다. 아무리 암담하고 불가능한 상황이어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기에 우리는 믿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채우심을 믿는 훈련을 위해 전대도 두 벌 옷도 갖지 않게 하시고 무전여행 보내셨잖아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절대 믿으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인을 고쳐주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하며 병이 낫고 귀신이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못 믿으면 사람이 추하게 됩니다. “주여, 믿습니다.”가 우리를 살립니다. 이것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 고백이 풍요로움을 열어줍니다. 이 확신이 우리를 위대하게 해줍니다.
이 놀라운 이적 앞에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고 합니다. 당시 로마법은 엄해서 죄수가 탈옥하면 간수가 사형을 당합니다. 그 때 바울이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데리고 나가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면서 복음을 전도 받아 온 집이 회개하여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전도단에서 있었던 기적 같은 간증이 있습니다. 175명의 단기선교팀이 배를 타고 선교지로 가던 중 큰 파도를 만나 무인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 먹을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확신하면서 예배하며 하나님을 의지했는데 신기한 것은 예배하는 이들 앞에 큰 고기들이 뛰어올라오더랍니다. 고래에게 쫓겼는지 대형 상어에게 쫓겼는지는 모르나 큰 고기들이 뛰어올라 무더기로 쌓였습니다. 제자들이 그물의 고기를 세어본 것처럼 세어보니 8,301마리였습니다. 그래서 그 물고기들을 소금에 절여두고 끼니마다 먹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들이 구조선에 구출될 동안 정확히 먹을 수 있는 양식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기적이 계속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하다 어려움이 닥친다고 실망하고 낙심하지 말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기에 소망 중에 감사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5. 지혜로워야 합니다.
35-40절입니다. “날이 새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 대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지혜를 봅니다. 당시 로마의 통치령에서 로마인을 불법으로 처벌한 경우에는 무거운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로마시민권을 가진 바울을 무고하게 처벌했으니 이제 상황은 역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상관들이 보낸 아전을 돌려보내고 그들로 하여금 친히 와서 데리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워 빌면서 여종의 주인들의 또 다른 소동을 막으려고 성에서 떠나기를 바울 일행에게 또 다시 비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대 승리를 거두웠습니다.
이처럼 마귀의 시험을 이기려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언어에 조심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오해 살 소지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웃과도 좋게 살고 좋은 이미지를 남겨야 합니다. 우리가 선한 일에 열심하면 누가 우리를 해하겠습니까? 사랑으로 무장하세요. 침묵만이 최고는 아닙니다. 때로는 변증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게으름도 조심하고 육체를 혹사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또 겸손한 마음으로 선진들의 경험을 참고해야 합니다. 서둘지 말고 무엇을 하기 전에 충분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주님의 은혜로 세상을 다 이긴 자들입니다. 이 승리의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시험은 축복의 예고편입니다. 그러므로 큰일을 기대하며 바울의 일행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이 다가올지라도 이기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마귀의 시험을 분별함으로 이기고 육의 혈기가 아닌 방법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기도와 찬송으로 온전히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