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나타나시는 때 (막 16:9)
[요약] 성도의 최고의 행복은 주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때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모하면 반드시 임하여 주신다. 그럼 언제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까? 위기의 때에 자기를 나타내신다.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서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을 때 나타내신다. 내가 죽으면 내 안의 예수가 사시게 된다. 헌신된 만큼 자기를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마음만 드리지 말고 몸도 함께 드려 섬기면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나타나신다. 이것은 예수님의 약속이시다.
이 시간에 “주님이 나타나시는 때”라는 제목입니다. 안개의 나라 영국에 날씨가 맑을 때면 온 나라는 순식간에 국민적 축제의 날로 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손을 잠시 놓고 공원으로 산으로 몰려간다고 합니다. 매일 뜨는 해도 모습을 나타내면 이렇게 반가운데 그 해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다면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성경은 예수님을 영광의 비밀 만국의 보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최고의 행복은 주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때입니다. 이때처럼 복되고 기쁨이 넘치는 때는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지만 우리 앞에 나타나시고 우리 곁에 나타나시고 우리 속에 나타나십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에녹입니다. 에녹은 이렇게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300년이나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나 깨나 주님의 온전한 임재를 날마다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모하면 반드시 임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호6:3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하심은 천체의 움직임보다 수학의 공식보다 더 정확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언제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까요?
1. 위기의 때에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요20:19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목숨이 두려워서 떨 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시고 평강을 축복하셨습니다.
이처럼 위기가 닥치면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평강과 위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이에게 주님은 하루에도 수없이 나타나셔서 위로하시고 천국의 비밀을 보여주셨다는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혼자 두지 아니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고아처럼 혼자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을 때도 예수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확신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영국의 여객선 스텔라호가 암초에 부딪쳐 난파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친 파도는 승객들이 탄 구명보트를 모두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여성이 탄 구명보트는 노가 없이도 계속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보트에는 유명한 가수인 마가렛 윌리암스가 타고 있었는데 그는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믿음의 징표로 함께 찬송을 부릅시다." 라고 외쳤습니다. 12명의 여성은 찬송을 부르며 사나운 폭풍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격랑 속에서도 보트는 침몰 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 순양함이 생존자들을 찾아 나섰는데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볼 수 없었지만 찬송소리를 듣고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도우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을 때 나타나십니다.
빌3:10-11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랬습니다. 내가 죽어지면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의지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나를 포기하고 주님을 택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내 뜻보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죄를 회개하여 죄와 상관이 없게 되고,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높이며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아버지의 뜻에 절대 복종한 것 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자기가 주이니 안 되는 것입니다. 육체가 죽어야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진짜 죽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진짜 죽어야 할 것이 죽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사는 것도 어려운 것만도 아닙니다.
어떤 부인이 사는 것이 어려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너무 괴롭습니다. 저 살기 싫으니 저를 천국으로 어서 불러 주세요.” 간절한 기도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래 내가 네 소원에 응답해 주마. 그런데 하늘나라로 너를 부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구나!" "뭡니까?" "네가 하늘나라에 오면 장례식을 해야 할 텐데 집안이 너무나 어지럽혀 있구나. 사람들이 장례식에 왔을 때 이 사람이 그래도 살림을 잘하고 갔다는 그런 이야기를 듣도록 집안 청소 좀 할래?" "하겠습니다." 그래서 부인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돈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정원 좀 내다보아라. 정원의 풀을 깍은 지 오래된 것 같구나. 사람들이 정원도 손질하지 않고 갔다고 흉보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그래서 부인은 며칠 동안 열심히 땀을 흘려가며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꽃도 심고 나무도 심고 열심히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됐다, 그런데 지금 네가 죽으면 네 자식들이 마음에 걸리지 않니?” “그렇습니다. 그동안 너무 소홀했습니다.” “그러면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 그걸 느낄 수 있도록 좀 자식들에게 며칠간 네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을 다 해 봐라.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해 봐라.” 그래서 부인은 며칠 동안 자식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안아 주고 손도 잡아 주고 맛있는 식사도 준비해서 먹이며 사랑한다는 표현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네 남편이 걸리는구나. 네 속 썩인 거 내가 잘 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네 마음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니? 밉지? 그러나 내 마지막 부탁인데 남편이 장례식 하면서 그래도 참 좋은 여자였는데 이런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사흘만, 꼭 사흘만, 남편이 뭐라 해도 절대로 대꾸하지 말고 남편에게 할 수 있는 한 마지막 친절을 베풀어라.” 그 말씀에 부인은 천국 가기 정말 어렵구나 생각했지만 이를 악물고 사흘 동안 예수님 말씀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하늘나라에 갈 시간이 다 되었구나. 마지막으로 네 집을 한 번 더 돌아보려무나.” 그래서 부인은 집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잘 정돈된 꽃이 핀 정원이 보기 좋았고, 집안도 깨끗이 정돈되어 상쾌했습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실로 오래간만에 자녀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 한구석에서 무척 괴롭고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부인의 머릿속에는 너무 좋아진 집안 환경을 바라보고 갑자기 주님을 따라가기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주님, 저 좀 이따 가면 안 되나요? 가족들과 같이 더 살다가 주님이 오라 하실 때까지 가겠어요.”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육체로 죽는다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죽어야 할 내가 죽어져야 합니다. 여인처럼 주님의 말씀 따라 철저히 죽어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가정은 복의 동산으로 변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우리 모두 이렇게 순종하고 저렇게 순종할 수 있을 만큼 죽어져야 합니다. 이 모습이 죽어진 모습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주인 된다면 어찌 주님이 나타나시겠습니까?
우리 옛사람은 야생마와 같아 속박이 싫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고난 속에서 고분고분 순종함을 배웁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려는 우리의 야성이 고난 속에서 주님의 쓰심에 합당하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악한 인간은 야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고난 속에서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고통스러우며 반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복임을 깊이 체험하게 되고 순종을 배우게 됩니다(히5:8).
그러므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바울의 그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행26:14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하셨습니다. 바울의 날마다 죽는 그 믿음도 고난 속에서 배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에도 육체의 가시를 통해서 교만하지 않는 비결을 가졌습니다(고후12:7). 청년 김익두도 날마다 말씀 보며 회개하며 자기를 죽였기에 예수님이 나타난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딤후2:11-12)
3. 헌신된 만큼 나타나십니다.
롬6:19에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했습니다. 자신을 드린 만큼 주님이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면 잔잔한 사랑과 감격은 느끼지만 큰 권능이 임하거나 그런 일은 극히 드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마음으로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몸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섬기라고 하십니다. 몸을 드려 섬겨 보세요. 발성으로 기도하고 발성으로 성경보고 찬송해 보세요. 마음으로만 섬기던 것과는 또 다른 임하심이 있습니다. 강한 능력이 임합니다. 은사가 나타납니다.
그 뿐 아니라 물질로서 헌신해 보세요. 복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 속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내 것 가지고 했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의 것을 가지고 주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물질관념이 주의 것으로 헌신이 되었느냐에 따라 물질의 청지기로 사용하심이 다르십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 받아서 물질로 헌신하면 물질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시18:25-26에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4.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누구에게 나타나셨습니까?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막16:9에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그랬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면 절대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나를 잊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늘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늘 주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요14:21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도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이 기도를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실 것이며 달라진 모습으로 다음 주에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고 내가 나타나면 주님의 모습은 숨겨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께 아버지가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사는 것이 어렵더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면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의 나타나시면 만사는 문제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말씀 앞에서 날마다 죽어지고 순종하고 충성하고 드려지고 사랑하며 더욱 변화 되십시다. 그래서 항구적인 하나님의 임재의 은총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가장 평안하고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탁] 요즘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는건지 잘못하는건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어떤 분이 대통령이든 기도하는 것은 곧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회원들께서는 나라를 위해서 더욱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