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할 곳이 없게 하라 (마 12:43-45)
거할 곳이 없게 하라 (마 12:43-45)
[요약] 귀신이 하는 일을 성경에서 살펴보면 육체적인 질병과 심리적 질병과 물질적 환난을 가져다 준다. 귀신이 거하는 거처는 더러운 곳이다. 그러므로 죄를 멀리하고 회개하여 정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귀신의 거처는 물 없는 곳이다. 물은 말씀이요 성령이므로 항상 은혜 충만해야 한다. 귀신의 처소는 어두운 곳이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마음을 밝게 해야 한다. 귀신의 거처는 적막한 곳이다. 침체된 곳에 귀신이 침범하는 것이니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소리가 충만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이 시간에 “거할 곳이 없게 하라”라는 제목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한 것은 우리 성도들이 삶에서 눌리고 고통당하는 분들이 많아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지독한 병균이 있을지라도 그 병균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주지 않는다면 그 병균은 사람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원수 악한 영들이 아무리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지만 그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거처를 주지 않는다면 결코 다가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귀신은 마귀의 부하입니다. 귀신이 하는 일을 성경에서 살펴보면 많은 육체적인 질병과 심리적 질병을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만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배후의 귀신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혹은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각종 해로운 것에 중독자가 되게 하고, 도둑질, 살인, 강도, 간음 등 대부분의 범죄의 원인이 되고, 가정과 사업을 파탄 시키고 심지어 극한 마음을 주어 자살의 원인도 됩니다. 모든 것이 다 귀신의 역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이 귀신에 의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귀신의 정체를 알고 귀신을 허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앙생활 잘하면서 매사에 마귀를 대적하며 중요한 것은 귀신의 거처를 제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귀신은 살기 좋은 처소를 만나면 거기에 들어와서 둥지를 틀고 떠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는 귀신의 거처가 어떤 곳인지 살펴보면서 귀신을 온전히 물리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귀신이 거하는 거처는 어디일까요?
1. 귀신의 거처는 더러운 곳입니다.
본문에 “더러운 귀신이” 그랬습니다. 귀신은 더럽기 때문에 더러운 곳을 좋아합니다. 막 5장을 보면 군대귀신이 나가면서 예수님께 애원한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무저갱에 보내지 말고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율법에 돼지는 부정의 상징입니다. 지금도 돼지고기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추한 곳이 귀신의 처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욕심과 죄악의 장소가 되면 안 됩니다. 향내 나는 곳에 봉접이 오고 구렁냄새 나는 곳에는 쇠파리가 오듯이 마음이 더러우면 귀신의 처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추한 온갖 탐욕과 불법과 죄악과 우상을 청소해 내야합니다. 귀신의 거처가 사라지면 귀신은 멀리 떠나가게 됩니다.
일곱 귀신에 들렸던 여인 마리아도 회개하고 예수 앞에 나오자 예수님께서 그 악한 귀신을 깨끗이 쫓아내주셨습니다. 회개해 보세요. 몸과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모릅니다. 회개할 때 열이 내리거나 냉이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치의 질고도 떠나가고 환경도 변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외형적인 현상은 하나님이 손길이 임함과 동시에 귀신이 떠나가는 현상입니다.
계18:2에 세속의 바벨론이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 바벨론이 예수 안에서 무너질 때 귀신도 함께 떠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의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철저히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영적 사역을 하려면 더욱 깨끗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구가 아니라 사단의 도구가 되고 말 것입니다.
2. 귀신의 거처는 물 없는 곳입니다.
다시 본문 43절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그랬습니다. 물 없는 곳은 문자 그대로는 사막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이처럼 귀신은 사막과 같은 심령을 찾아 거기서 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사막화되면 안 됩니다. 물은 말씀이요 성령의 은혜입니다. 우리 마음에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면 귀신은 절대 들어와서 살 수 없습니다. 은혜로 충만한 마음에 들어왔다가는 잠시도 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빛을 싫어하듯이 귀신도 밝은 빛이 비치는 심령에는 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오늘도 물 없는 곳은 어디인가? 어느 심령이 은혜 떨어졌는가? 어느 심령이 말씀이 없는가? 어느 심령이 사막 같이 황폐해졌는가? 두루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은혜 없는 마음에 가장 거하기 편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보혈 없는 마음을 찾아다닙니다. 마음이 사막과 같이 메마를 때 얼마나 악한 영들이 작란을 칩니까? 그러므로 마음을 다해 은혜 받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통계학자요 목회자인 조지 바너는 많은 사람들이 벤치워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벤치만 따뜻하게 데우고 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의자만 데우고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잘 믿는다는 미국교회에 벤치워머가 90%나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예배에 나왔지만 사모함도 감격도 없고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남도 없다면 그는 벤치워머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이기려면 벤치워머가 되지 말고 우리의 심령을 말씀과 성령으로 가득히 채워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빈 집이 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주인 된 집이요, 성령으로 가득한 집이요, 찬송으로 가득한 집이어야지 빈 집이 되면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와서 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 말씀과 성령으로 활활 타오르는 심령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귀신의 처소는 어두운 곳입니다.
유1:6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의 처소는 어둔 곳입니다. 어둡다는 것은 밤과 같은 물질적인 어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어두우면 귀신의 처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두움을 물리치고 마음을 밝게 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밝은 마음을 가지면 악한 영이 거할 수 없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 가운데는 과거 어두웠던 시절이 많습니다. 실연, 사망으로 인한 이별, 성폭행 당함, 중대한 사고, 시험에서 낙방, 괴롭힘 당함, 억울한 일 당함, 갑작스런 실업, 과중한 채무, 사업의 실패, 과중한 스트레스 등을 갑자기 당하는 경우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 때 받은 마음의 상처로 어두운 생각을 하게 될 때 그 상처를 타고 마귀가 역사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놀래거나 심적인 충격을 받을 때, 부정적인 관념을 통해서, 혈기 부릴때, 내성적인 성격으로 고민할 때, 자포자기 할 때, 죽음을 너무나 슬퍼할 때, 제사 지낼때 등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지킬만한 것은 마음이며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오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절재해야 합니다.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귀신은 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위로를 통해 치료함을 받고 해처럼 밝게 살아야 합니다.
4. 귀신의 거처는 적막한 곳입니다.
막5:3에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했다 했습니다. 무덤을 무서워 마세요. 기독교 문명이 발달한 곳일수록 무덤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실재로 무덤에 귀신이 거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곳에 공연히 의미 주면 안 됩니다. 의미를 주면 줄수록 마귀가 그 심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덤을 말씀한 것은 무덤이 상징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말이 없는 곳입니다. 소리가 없어요. 예배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찬송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진리를 말씀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는 마귀를 명령하는 소리도 없습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합니다.
이처럼 무덤 같은 심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천로역정을 쓴 죤 번연은 "만일 당신의 입이 벙어리일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귀머거리가 되실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입니까? 귀신은 우리의 기도소리가 속으로 기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가까이 다가옵니다. 소리 내어 찬송하고 기도하는 곳은 영적 활기가 생기기 때문에 귀신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교는 소리가 없거나 작습니다. 불교도 소리가 없거나 작습니다. 체험을 강조하는 뉴에이지도 소리가 없거나 작습니다. 귀신은 소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소리가 큽니다. 소리가 있는 교회일수록 활기가 넘칩니다. 천국도 소리로 가득 찬 곳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소리가 없는 사람은 악령이 주는 온갖 잡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래서 말이 없고 순한 사람에게 귀신이 잘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수가 갑자기 적어졌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
소리를 내면 살아요. 그러나 소리가 들어가면 죽어요. 소리를 내보세요. 발성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신앙생활해 보세요. 찬양 테이프도 틀어놓으세요. 찬송에 맞춰 몸도 움직여 보세요. 삶에 활기가 넘치고 심령에 성령의 불이 붙습니다. 더러운 심령은 깨끗해지고 악한 영들이 소리치며 나갈 것입니다.
이러기에 묵상을 좋아하는 서구인들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따라 하다가 사단의 미혹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성기도가 없는 묵상은 문제점이 많습니다. 묵상은 발성기도가 뒷받침 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인 줄 알았는데 악령의 시험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령을 이기려면 신앙생활을 더 활발하게 하고 더 강하게 해야 합니다.
멜테리가 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도팀이 어떤 마을에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그 마을에서 토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예수 신을 전하고 싶다면 예수가 우리 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라.” 그러자 전도팀은 제사장에게 “마을 사람들을 다 모으라. 그러면 하나님과 너희 신 중에 누가 더 센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1천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전도팀은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 명령했습니다. “예수의 피를 의지해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은 떠나갈지어다!” 그 순간 토착신 제사장의 우두머리가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 나도 여러분의 신 예수를 믿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신의 제사장으로 늘 신들과 대화를 해왔는데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떠나라고 명령할 때 이곳에 모였던 가장 큰 귀신부터 가장 작은 귀신까지 예수가 더 이상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면서 다 달아나버렸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내게 느껴지는 체험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행동하면 마귀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귀신은 멸망시키기 위해서 다가오는 우리의 대대로 철천지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귀신은 오늘도 은혜 없는 곳, 더러운 곳, 주인 없는 곳, 어두운 곳, 적막한 곳을 찾아 해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귀신의 처소가 되지 않도록 신앙생활 잘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온전히 평탄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