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기도하는 자가 받는 복 (시 23;1-6)

공 상희 2008. 8. 2. 11:21

기도하는 자가 받는 복 (시 23;1-6)

[요약] 

시편 23편의 중요한 핵심은 6절의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한 말씀에 있다. 여호와의 집이란 신령한 의미로 은혜의 보좌 앞 즉 기도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기도하는 자가 받는 복은 먼저 부족함이 없는 안식의 복이다. 하나님의 평강을 주신다. 또 부족함이 없는 소생의 복이다. 영의 감각이 살아나고 능력과 은사가 입혀진다. 또 부족함이 없는 안전의 복이다. 부르짖는 기도가 두려움과 상처를 치료한다. 또 부족함이 없는 승리의 복이다. 그리고 부족함이 없는 사랑의 복이다.

 

 

이 시간에 “기도하는 자가 받는 복”이라는 제목입니다. 시편 23편은 기독교인은 물론 불신자 가운데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암송되는 유명한 다윗의 시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1-2절) 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시입니까? 이 시는 바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간증이요 신앙고백입니다. 언젠가 월남전에 참전했던 분이 제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월남의 정글은 밤이 되면 공포스러울 만큼 캄캄한데 그 정글 속에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헬기를 타고 나타난 군목이 공중에서 시편 23편을 들려주는데 그렇게 평안할수가 없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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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읽거나 암송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토록 복된 하나님의 복을 왜 나는 누리지 못할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런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아쉬움을 갖는 자가 많습니다. 그것은 시편 23편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마지막 6절에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6절에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했는데 여호와의 집이란 문자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 영적으로는 은혜의 보좌 앞에서 사는 즉 기도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시편 23편은 기도하는 자가 누리는 복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한 마디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복을 누립니다.

기도하는 자가 받는 복은 어떤 것입니까?

1. 부족함이 없는 안식의 복입니다.


그냥 안식이 아닙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안식입니다. 2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했습니다. 필립켈러의 양과 목자라는 책을 보면 다윗이 살던 동네는 건조해서 절대 푸른 초장이 생길 환경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양이 눕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랍니다. 양은 원래 겁이 많아서 모든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절대 눕지 않습니다.

그리고 양은 자기들끼리 늘 싸우는데 이런 싸움이 멈추기 전엔 눕지 않고, 양의 몸에 벌레나 상처가 나도 없어지거나 낫기 전에는 눕지 않습니다. 그리고 양은 푸른 초장에서 풀을 먹고 배가 부르고 물을 마셔 만족할 때만이 눕습니다. 그러므로 양이 초장에서 눕는다는 것은 목자의 완전한 도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한가지 괴로움이라도 존재하면 안식할 수 없습니다. 살아갈수록 세상살이가 더 힘드시죠?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든 없든 크든 작든 문제가 없는 사람보다 더 평안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안식의 은총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평안을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주노라 하셨고, 바울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평안과 안식을 기도로서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부족함이 없는 소생하는 복입니다.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러므로 기도하면 우리 영혼이 깨어납니다. 잠에 빠진 사람이 눈을 뜨고 깨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영의 기능이 살아납니다. 우리 영의 감각도 살아납니다. 우리 영혼에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천국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영이 소생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소생시키느냐 겨우 살만큼이 아닙니다. 온전히 의롭게 살만큼, 온전히 하나님의 기쁘신 길을 갈만큼, 온전히 하나님의 일하기 부족함이 없을 만큼 소생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소생하여 깨어날 때 죄가 싫어지고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어 오고 사람들의 영적 상태까지 내 심령에 느껴지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심령들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은지 모릅니다. 심령이 무감각해져 있어요. 심령이 예민하다 해도 강하지 못하고 약한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늘 낙심하고 근심하고 초조하고 두려움과 공포와 온갖 욕망의 노예가 됩니다. 기도해야 영혼이 활성화되고 깨어납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기도의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3. 부족함이 없는 안전의 복입니다.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했습니다. 여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유다지파의 사해부근의 풀 한포기 나지 않는 험한 골짜기를 말합니다. 죽음의 계곡입니다. 여기 양이 들어가면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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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록웰(Norman Rockwell)은 네 가지 자유를 말했습니다. 1. 종교의 자유(Freedom to Worship), 2. 발언의 자유(Freedom of Speech), 3.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유(Freedom from Want), 그리고 4. 공포로부터 자유(Freedom From Fear)입니다. 진정 공포에서 해방될 때 나는 자유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많은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그 두려움은 대부분 내부적입니다. 질병과 실패와 죽음과 대인관계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과 공포는 인간을 철저히 파괴하려는 사탄의 공격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두려움을 주지 않습니다. 딤후1:7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왜 두려울까요? 그것은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가 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불안과 공포가 사라집니다.

사소한 일에도 늘 걱정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걱정 없는 사람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본 그의 친구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자네 오늘은 불안해 보이지 않는군.” 그러자 그는 “요즘 한 달 내내 걱정을 하지 않았다네.” “그렇다면 어쩐 일인가?” “그건 간단하지. 나를 위해서 대신 걱정해줄 사람을 고용했다네. 신문에 광고를 냈지. 와서 내 대신 걱정을 해주면 하루에 백만 원씩 주겠다고” “아니 하루에 백만 원? 자네는 그만한 돈이 없지 않는가?” “없지, 그러나 그건 이제 그 사람이 걱정할 문제라네.” 대신 걱정해 줄 사람을 고용했으니 그것마저도 그 사람이 걱정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월급 주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대신 걱정해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데 무엇이 두렵고 걱정이냐는 말입니다.

어느 성도는 늘 우울하고 슬프고 자신감도 없고 외로움 죄책감 소유욕 집착 잡념 그리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는데 늘 부르짖고 기도했더니 다 사라지더랍니다. 기도하는 성도만이 그것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4. 부족함이 없는 승리의 복입니다.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보통 승리가 아닙니다. 원수 앞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시고 향유로 영광스럽게까지 해주시는 승리입니다. 원수는 내가 못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기대대로 하지 않으시고 그 앞에서 보란 듯이 우리를 높여주시고 또 높여주십니다. 온전한 승리입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받는 복음 큽니다.

미국의 스텐레이 탐 이야기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7번 실패한 사업을 인수받았습니다. 그가 경영을 시작할 때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기도 중에 “네 사업을 내 이름으로 등기하고 내 이름으로 사업을 하거라.” 그래서 사업체를 예수님 이름으로 등기하려 했더니 등기소 직원이 웃었습니다. 그러나 탐의 자초지종을 들은 그 관리는 기꺼이 승낙하면서 물었습니다. “주소는 무엇이라고 할까요?” “천국 일번지라고 하세요.” “전화번호는요?” “66국에 3927로 하십시오.” 무슨 의미입니까? 성경은 66권, 구약 39권 신약은 27권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탐은 예수님의 사업이기에 사장을 예수님으로 모시고 날마다 기도하고 무엇이든지 주님께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익금은 모두 주님의 것이고 자기는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사업을 번창케 해주시고 18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다 기도의 승리입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으로 하면 우리의 잔이 넘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승리를 모릅니다. 감격이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보세요. 온갖 승리가 나타납니다. 모두 다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5. 부족함이 없는 사랑의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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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여기 인자하심은 ‘헤세드’라고 해서 언약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대로 앞으로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혹 주님을 잊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버리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할까요?

몸과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세요.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몸을 다해 기도하시고, 몸만 아니라 마음을 다해 기도하세요. 이스라엘을 보세요.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사사기에도 이스라엘이 부르짖지 않다가 사방에 대적으로 둘러싸이고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심해지자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사사를 보내셔서 그 고통에서 건져주십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30분 부르짖고 30분 묵상기도하고 30분 부르짖고 다시 30분 묵상해 보세요. 말로 기도하면 뇌가 많이 활동하지만 주여 하고 부르짖으면 심령이 많이 움직입니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배와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가 더 좋습니다. 그래야 더욱 심령으로 기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일생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랬기에 승리가 있었고 기적이 있었고 고통도 핍박도 죽음도 두렵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본받으십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시편 23편의 온갖 아름다운 복을 누리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