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받은 사람들(행19:1-7)
요즘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은 John Newton이 작사 작곡한 Amazing Grace입니다.
이 찬송가를 지은 John Newton은 원래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던 부도덕한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난폭하고 거칠고 포악한 노예상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성령으로 거듭나 위대한 목회자가 되어 많은 찬송가를 썼습니다. 특히 그는 자기를 거듭나게 하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여 일평생 헌신의 열정을 다 쏟아 바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한 후 39살에 목사가 되어 82세까지 43년 동안 초지일관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류 윌리스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이 계실 줄 압니다. 이 사람은 자기 친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과학 문명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발달된 이 세상에서 아직까지도 케케묵은 성경을 믿고 있다니. 그래서 그는 성경의 불합리성과 성경의 낡은 모순을 지적하고, 자기 친구들과 성경을 토론해서 성경의 불합리와 모순을 폭로하기 위해서 기독교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경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놀라운 사실들과 부딪치기 시작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성경 안의 수많은 자료를 갖다 놓고 이 성경을 연구하면서 압도할 만한 성경의 놀라운 증언 앞에서 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에 대한 반론을 펴기 위해서 책제목을 구상하고 1장과 2장을 썼으나 2장을 쓰다가 자기의 붓을 꺾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그처럼 거부하던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롭게 발견한 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을 하나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소설과 영화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벤허」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단순히 지식적이고 이론적인 예수를 믿어서는 안됩니다. 살아 계신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감동 받지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1. 당신도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아볼로 라는 사람이 세운 에베소교회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교회생활은 잘 하고 있었으나, 아직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의 설교를 통해 마음에 감동을 받고 도덕 재무장 운동을 펼치는 수준에만 머물렀던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사도 바울이 에베소라는 도시에 가서 그들의 종교실태를 조사해보니까, 그곳에는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매우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는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고 있는 신조와, 신앙체험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신앙생활만을 하고 있었습니다(1-3절).
그래서 바울은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들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체험하셨습니까?"(2절)
그들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습니다."(2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분명히 성령으로 거듭나셨나요?
성령님께서 내가 죄인인 줄 깨닫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새 생명의 구원 은총을 받으셨다는 확신이 있으신가요?
만일 당신이 교회를 오래 동안 다녔다 하더라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직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 3:5).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그 당시 유대사회의 민족 지도자였던 니고데모라는 사람에게 하신 폭탄선언입니다.
그는 유대 민족의 율법학자요, 존경받는 랍비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엄중하게 선언하십니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느니라.』
특히 니고데모라는 이름은 "탁월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아무리 신분상으로 탁월하고, 사회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거듭나야만 구원받습니다.
그가 아무리 인품이 훌륭하고, 존경받는 유명인사라 할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기독교는 보다 착하고, 보다 나은 사람을 만드는 도덕중심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새 사람을 만드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종교입니다.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거듭나야 만 합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도 심령이 거듭나야 합니다. 종교적인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도덕이나 윤리가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근본이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제도 개혁만으로는 사회가 달라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근본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You must be born again】
Robert James McCracken 이라는 미국의 물리학자는 이런 진지한 선언을 합니다.
"나는 과학자로서 세 가지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첫째는 구원이란 과학 안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도덕적인 부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생명을 주는 종교 없이는 어떠한 도덕적인 부흥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도덕적 종교가 아닙니다. 도덕만 가지고는 사람의 근본이 달라질 수 없습니다.
공자 선생님의 논어가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그 속 사람이 본질적으로 달라집니다. 성령님 만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 성령님 만이 우리를 새 존재로 만들어주십니다.
성령님 만이 내 마음에 예수님을 진정한 구주로 영접하고, 모시게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당신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계십니까? 그러면 이미 거듭난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감동 받지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영국의 훌륭한 부흥사 중에 죠지 윗필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쟌 웨슬리와 함께 영국교회에 큰 부흥운동을 일으킨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의 18번 설교는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청년이 이 설교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윗필드 목사님의 비서로 자원하였습니다. 윗필드 목사님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 다니며 수종드는 가방모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윗필드 목사님은 어디를 가서 설교를 하든지, 언제나 "거듭나야 한다"는 설교만 반복했습니다
어느 날 이 젊은이는 너무 식상하게 느껴져 윗필드 목사님께 항변을 했습니다. "목사님, 그렇게 설교 레파토리가 없으세요? 이제 새로운 설교를 하시면 안돼요? 벌써 70번째나 반복하고 있어요."
그때 윗필드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Because you must be born again.』
그렇습니다.
우리가 언제 세례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얼마나 다녔느냐도 아닙니다.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You must be born again!
2. 당신도 성령이 머무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때부터 우리는 성령이 머무시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연약한 우리를 통해서 성령님은 다양한 활동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특히 본문 5-7절을 보십시오.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받은 후에 성령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여기서 그들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즉 이 방언은 우리가 기도할 때 활용하는 천국언어의 방언이 아닙니다. 이 방언은 모두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의 방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나타났던 오순절 방언과 똑같은 언어의 방언현상입니다. 각자가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듣는 초자연적 청취의 이적입니다(행 2:4-11).
성령님께서 이런 이적을 일으키시는 것은 모든 신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우리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다 한 성령을 마신 자"라고 설명합니다(고전 12:13).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성령님을 내 가슴속에 모시고 사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내 안에 머무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의 내주』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여하튼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성령님이 머무시는 대단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그처럼 크고 강력했던 원동력은 성령님이 그분 속에 머물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성령으로(en pneumati) 충만하셨습니다(눅 4:1).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우리 속에도 그런 큰 능력의 성령님이 머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엄청난 Authority와 Power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 그대로 성령님의 권능(dunamis)을 가진 자들입니다.
무엇이든지 가능케 하는 능력을 지닌 자들입니다. 문자 그대로 "위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곧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사람이 된 후에, 그는 불가능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했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거뜬히 능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역동적 인생을 살았습니다.
성령님은 그 본성이 능력이십니다. 권능이십니다. 위력이십니다.
특별히 성령님을 일곱 영이라고 말할 때는 다양한 능력의 영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의 성령님이 내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성령님은 우리 속에 두 가지 방법으로 머무르십니다.
1)개인적으로(Personal) 내주하십니다
성령님의 신비로운 내주하심이야말로 성령님의 은혜로운 사역의 분명한 측면입니다.
"그가 너희 안에 반드시 계시리라"
특히 요한복음 14장 17절을 보면(Weymouth 번역), "그는 당신 곁에 계시며, 그리고 당신 안에 계십니다." 이것이 곧 성령님의 성육신이십니다.
2)영구적으로(Permanent) 내주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는, 계속 머무시려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십니다(요 14:16).
그분의 거룩한 거주(the holy inhabitant)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가슴에 거하시되, 완전히 정착하시고 계속 머무시므로 결코 나가시지 않으십니다 비록 우리가 그분을 근심시켜드리더라도 그분은 결코 우리에게서 나가시지 않습니다(엡 3:16).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함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은 마음에 사모하기만 하면 받습니다. 간구하기만 하면 선물로 주십니다.
특별히 온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며, 기다리기만 하면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우리가 에베소서를 보면, 에베소교회는 그 어느 교회보다도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큰 능력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신자의 3중 성령체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①중생 체험(거듭남의 신비한 체험)
②인격 변화의 체험(성령의 열매)
③능력 체험입니다(성령의 다양한 은사)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 능력 체험으로 새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나 다니엘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머무시는 만큼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도 오직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자기 스승 엘리야보다 더 많은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이 머무시는 사람들이었기에 세상이 감당치 못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21세기 첫 출발과 함께 성령의 능력을 새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눅 3:21. 4:1)
오늘 우리 모두 다 성령 받은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구원받고, 성령으로 능력받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이번 성령대망 축제를 통하여 모두 다 성령받은 사람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