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

오직 성령으로 사는 자(슥4:6,요16:13-14)

공 상희 2007. 5. 23. 14:39
오직 성령으로 사는 자(슥4:6,요16:13-14)  

 

오직 성령으로 사는 자(슥4:6,요16:13-14)


존 번연이 지은 유명한 '천로 역정'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성경 다음으로 가는 책이라고까지 극찬하기도 합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서도 이 책을 한 번쯤은 읽으신 분들이 꽤 계신 줄 압니다. 거기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하늘나라를 향해서 멀리 순례 의 길을 떠납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 보았더니 방에서 누가 청소를 합니다. 그저 비로 먼지 를 열심히 쓸어내기는 하는데 먼지가 일어나서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됩니다. 쓸 려고 하면 더욱 더 방이 어지러워지고 더러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인도자에게 묻습 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저것이 율법이니라. 바르게 해보려고 애쓰고 또 애쓰고 노력 하면 할수록 더 죄가 많아지고 점점 더 어지러워지느니라." 그래서 바로 옆방을 들어가 보 니까 거기에도 먼지는 똑같이 많은데 '쫘악' 물을 뿌리고 나서 청소를 하니까 깨끗하게 됩 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이 성령이니라. 이게 곧 은혜의 역사니라." 젞가 목회를 시작하기 전, 모 대 기업체의 의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생 산 라인을 구경했는데 아주 최신식 기계를 잘 장치해놨습디다. 그런데 점심시간이라 공장은 조용합니다. 담당 과장이 "한번 보시렵니까?" 하면서 전기 스위치를 딱 넣자 기계가 '우르릉 '하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전기가 들어가기 전에는 완전히 철근덩어리이던 것이 전기라고 하는 생명력이 들어가는 순간 살아있는 기계로 작동하는 걸 봤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힘으 로 그 큰 기계가 돌아갑니다. 여러분, 사람이라는 인격, 지식이나, 물질이나, 재주나,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거기에 생명력이 없으면 그건 다 하나의 물질에 불과합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하나의 물질 말입니 다. 그러나 여기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작용할 때 진정한 삶이 피어오르는 것입니다. 그래 서 인격을 변화시키고, 내적인 존재를 변화시키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사람이 되고 용기 의 사람이 됩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붙들고 당신의 세계로 인도 하시는 것을 보고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생명'! 그것을 제공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오늘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성령이십니다. 성령! 그분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자신이 뜻하는 대로 움직이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특별한 틀 안에 하나님을 모셔두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성령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상징물은 유체(流體)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유의하십 시오. 유체란 기체와 액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 예를 들어 바람, 불, 기름, 물 등입니다. 그런데 그 물질들을 여러분들이 손으로 한 번 잡아보십시오. 그러면 그것들은 '나를 당신의 손 안에 가두어 둘 수 없을 것'이라고 정중히 거절할 것입니다. 곧 성령은 도덕적으로 그릇 된 일은 결코 행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영역에서는 예외적이고, 임의적인 방법으 로 행하실 권리를 가지십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같이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매일 치러지는 전투와도 같습니다. 이 전투에 지속적으로 효력을 미치 고 있는 법이 둘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 8장에서는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 '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 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륙하는 비행기를 생각해 봅시다. 승객들 이 다 탑승하고 안전벨트를 매면 항공기는 활주로의 끝까지 서서히 굴러갑니다. 그때까지는 지구 인력이 항공기를 아래로 끌어당겨 붙잡고 있습니다. 이윽고 이륙할 수 있을 정도의 속 도에 이르면 항공기는 떠오르게 됩니다. 지구 인력의 법은 더 이상 그 항공기를 지배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기체 역학의 법', 곧 상위법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 인력의 법을 극복하고, 항공기가 더 상위법의 지배를 받게 된 요인은 곧 전진운동입니다. 항 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하지 않고 그 길에서 앞을 향한 전력 질주 말입니다. 여기에 '생명의 성령의 법'에 지배받아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들이 성령의 법에 따라 부상하지 못하고 아직도 이 땅의 힘에 끌려서 앞을 향해 전력 질주하지 못하는 그 원인되는 인력이 무엇입니까? 첫째, 죄악의 인력입니다.


지극히 작은 죄가 우리의 영혼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예를 많이 봅니다. 경건한 삶을 살려는 사람들은 작은 허물이나 죄라도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사도 바 울은 죄악의 세력이 사람의 인격 안팎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죄악이 자 신을 사로잡아 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나태함이 음란죄로 음란죄가 살인으로 이르게 하는 죄의 수렁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다윗의 기도를 들어보면 그때의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죄는 모든 불행의 뿌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파괴했고 자신의 평화도 파괴했습니다. 죄 는 이웃에게 적대감정을 만들어 놓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파괴하는 등 모든 부분에서 불행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참된 행복과 평화는 죄를 없애는데 있습니다. 그러 나 뛰어난 인간의 지혜는 죄의 실체는 모르면서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가난과 무지가 죄의 온상이라 생각하여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 고 교육으로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면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질문명과 도덕적 타락은 정비례하고 있습니다. 죄책감에 서 벗어나는 것으로만은 안됩니다. 죄의 결과를 용서받는다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죄 자체를 해결하는 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죄를 근본적으로 없이하신 분입니 다. 그리고 성령께 이 모든 사역을 부탁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이 은총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셔서 우리로 그 모든 죄에 서 해방을 받으며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스가랴는 이런 사실을 오랜 전에 미리 예언했던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 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둘째, 좌절감의 인력입니다. 사람에게는 그 죄로 말미암아 좌절감과 허무주의가 생기게 되었 고 그로 인해 질병과 죽음의 고통이 왔습니다. 그래서 출생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해왔지만 그럼 에도 영적인, 육적인 질병과 죽음의 고통은 계속 사람을 괴롭히고 있으며 그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인간의 불행인 질병을 짊어지게 하시고 죽음을 정복 하셔서 부활의 주가 되셨습니다. 질병과 죽음을 사람은 어찌할 수 없었으나 예수께서 질병 의 실체와 죽음의 베일을 벗겨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질병에서의 치유와 죽음에 서 영생을 얻게 되는 축복을 성령께서 우리의 믿음을 따라 우리에게 가져다주셔서 그 모든 좌절감에서 자유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은 헛되고 또 헛되다는 말을 공감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영원하지 않고 또 좌절 스럽고 헛되기에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은 나를 부르는 확실한 일터입니다. 내 가 찾아가야 할 곳과 할 일이 너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허무주의에 빠져 좌절하지 않습니다. 나로 허무감에서 벗어나게 하 신 성령께서 나로 이 땅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이루게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래서 스가랴는 선포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 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 3 - 셋째, 세속 사랑의 인력입니다. 이 세상은 우는 사자같이 우리의 영혼을 사냥하려는 무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스스로의 진정한 모습을 잃어버리게 하고 방탕하게 하는 유혹의 손길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부채질하 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세속적인 사랑에 쉽게 물들어 갑니다. 육체를 향한 순간의 감미로운 유혹이 자신의 영혼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 사랑은 스스로 취하기도 하고 스스로 버릴 수도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 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속 사랑이란 쉽게 취할 수는 있어도 쉽게 버릴 수는 없다는 것과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의지력이 도대체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과연 사람의 힘과 능으로 지켜나갈 수 없는 것이 의지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시며 그 결심한 바를 지켜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다짐은 항상 실패와 좌 절로 마쳐질 때가 태반입니다. 호세아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 고 강력하게 권고를 했습니다. 백성들은 그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난처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 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호 6:4)." 예 레미아는 패역한 백성을 향하여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 13:23)"고 했습니다. 언제나 선 보다는 악에 익숙한 우리 또한 그럴 것입니다. 베드로의 다짐이 무너졌듯이 우리의 결심도 매번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변한 모습을 보면, 우리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로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감정은 우리의 의지력을 받쳐주지 못하지만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의지력으로 우리를 능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스가랴는 이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만군 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 으로 되느니라." 넷째, 그릇된 신앙사상의 인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고는 하는데 그의 신앙사상이 빗나간 자들을 많이 봅니다. 독선적인 신앙사상, 신비주의나 이성주의로의 몰입, 거짓 선지 자들의 거짓 예언들 등, 많은 것들이 우리를 그릇된 신앙의 함정에 빠지도록 우리를 우겨 싸서 그의 인력으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도 추스르기 어려운데 무슨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하나 님께 감사드릴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케 하심으로 영생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주신 일입니다. 그러나 사명이 귀하고 아름 다운 것일지라도 그것을 우리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 약속하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명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심으로만 감당해 갈 수가 있다고 오늘 스가랴는 선언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 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구해야 할 이유는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 나 허무와 좌절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갈 수 없으며 우리의 힘이나 의지력으로 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임재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내재와 충만을 구해야 합니 다. 하나님은 그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에 대한 소원이 있습니다. 그건 미국 펜사콜라의 브론스빌 교회 같이 성령의 폭발 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별로 큰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그 조그마한 교회 를 통해 하나님은 성령의 큰 역사를 일으키시고 250여 만명이나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브론스빌 교회가 그렇게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게 된 이유가 여섯 가지랍니다.


■ 브론스빌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를 포함한 많은 교회들은 프로그 램과 조직 그리고 행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교회이지, 기도를 충분히 하는 교회는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막 11:17)"고 말씀하셨습니다. 브론스빌 교 회의 모든 예배는 기도로 개혁되었습니다. ■ 브론스빌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갈급함이 있었기 때문입니 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영적으로 심한 갈급함이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 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영적 목마름과 갈급함을 보셨습니다. ■ 브론스빌 교회는 주님을 섬기는데 댓가를 지불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부흥의 전초 기지로 삼으신 이유는 주님을 섬기는 데 댓가를 지불하겠다는 - 5 - 뜨거운 열정이 성도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흥이라는 것은 아주 값비싼 댓가를 지불해 야 얻게 되는 상급입니다. 부흥을 위해서 지불해야 할 댓가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과 생애 전체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 브론스빌 교회는 목회자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 교회의 목회자들은 하나 님의 놀라운 능력이 그들의 길을 인도해 줄 것을 믿고 철저히 신뢰합니다. 브론스빌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난 다음부터 성경에 있는 대로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임재하실 때 인간의 이성과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인간적 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고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우리는 일부러 이 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기를 추구하거나, 권장하거나, 조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의 심령이 변화되기 위해서라면 수용하겠다는 것입니다. ■ 브론스빌 교회는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선택해 서 계속적인 부흥의 현장으로 만드신 이유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예배현장에서 일어나는 모 든 결과에 대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 브론스빌 교회는 죄에 대해 대적코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이 시대는 죄가 무 엇이냐는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력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죄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 고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죄지은 사람을 보고 죄짓는 것이 아니라 '개성'이라고 생각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의 위험을 부인해버리거나 죄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원래 뜨거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많이 영적으로 침체되었습니다. 문제는 다 제게 있습니다. 저부터 각성하고 부르짖으며 성령을 구 하면 됩니다. 제가 시작할 것이니 우리 모두 그렇게 합시다. 다시 뜨겁게 기도합시다. 하나 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갈구하십시다.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무엇이든 댓 가를 치룰 결단을 하십시다. 오직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든지,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철저히 신뢰하십시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은 그분께만 돌리시기로 고백하십시다. 죄에 대하여는 세 밀하게 대적하고 누가 나의 잘못을 지적하면 감사하며 받아들이십시다. 그러면 어찌 브론스 빌 교회만이겠습니까? 우리도 돌이키고 부르짖으면 주실 것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사는 자 로서 살기로 결단하고 진실한 무릎으로 주님께 구하면 그분은 우리를 다시 용납하시고 성령 으로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