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

성령과 믿음 충만한 바나바(행11:19-26)

공 상희 2007. 5. 23. 14:35
성령과 믿음 충만한 바나바(행11:19-26)  

 

성령과 믿음 충만한 바나바(행11:19-26)


바나바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하나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뛰어난 인물도 아닙니다. 일반 평신도 신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를 세워 가고 사람들을 키우는 일꾼의 사명을 잘 감당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모범입니다.


바나바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권위자, 위로자"라고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권면을 잘 하는 사람이요, 위로를 은혜롭게 잘 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바나바는 레위인으로서 구브로 섬에서 출생하여서 청년 때에 신자가 된 사람입니다. 본래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후에 이름이 바나바로 개명된 사람입니다.(행4:36) 바나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Ⅰ. 바나바는 착한 사람입니다.

행11:24에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착하다고 하는 말의 헬라어 "아가도스"인데 "도덕적인 품성이 선하다"라고 하는 뜻입니다.(마19:16) 바나바의 성품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부터 본성적으로 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착한 데에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였으니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까! 이 착함이라는 것은 빛의 자녀들이 반드시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본래 괴팍한 성품이었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으면 착해져야 합니다. 이 열매가 있어야 교회에서 덕을 세울 수 있고 밖에 나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은 남을 속일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나다나엘을 살펴보았습니다만 "간사함이 없고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람임을 말합니다. 신자로서 착하지 못하고 예수 이름을 파는 가롯 유다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착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사랑이 많다는 것과 둘째로 순종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행11:22) 노아와 아브라함, 이삭, 요셉은 다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셋째로 착한 사람은 자기보다 남을 더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에게 비옥하고 광대한 토지를 먼저 고르게 하고 자기는 헤브론의 산지와 박토를 가지게 된 것을 압니다. 아마도 뭐한 사람 같으면 자기가 연장자이니 먼저 택하여야 한다고 비옥한 땅을 자기가 같고 박토를 조카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삭도 자기가 애써 판 우물을 빼앗겠다고 덤벼 들 때마다 하나님께 갚아 주실 줄 알고 싸우지 아니하고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또 파곤 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보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착해야 한다는 것을 또 느낄 수 있습니다. 마5:39-44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 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착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함께 멱살을 잡아 보십시오,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먹으려고 으르렁 거려 보십시오, 어떻게 되겠습니까! 독한 마음을 먹고 이를 갈아 보십시오, 그 사람에게 교회가 보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착하지 못하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가리켜 빛의 자녀들이라고 하는데 빛의 자녀들이 맺어야 할 열매는 착함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Ⅱ. 바나바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신자는 믿음의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부요한 상태를 가리켜 충만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믿음이 부요하면 걱정 염려 근심이 줄어들고, 믿음이 적어지면 염려 근신 불평 원망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정확하고 분명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할 때에 믿음이 없는 사람과 일하게 되면 힘이 들고 가도 꼬불꼬불 가게 되는 어려움이 생깁니다. 믿음이 충만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무리 그 땅의 거민이 장대하고 우리는 그 앞에 나약한 존재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그 땅은 우리에게 주셨으니 가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냥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열 명의 정탐들은 불평하고 원망하고 다시 돌아가자는 등, 여기서 우리는 다 죽게 생겼다는 둥,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배타고 갈리리 바다를 지나가실 때에 풍랑을 만났습니다. . 그 때의 모습을 보십시오, 모두가 다 두려워하면서 떨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도 이 배에 주님이 함께 계심으로 이 배는 안전하다고 믿으면 되는데 금방 무슨 일이 일어 날 것처럼 난리를 치지 않습니까! 이 믿음이 없으면 매사가 이렇게 힘이 드니 얼마나 일하기가 힘이 들겠습니까!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나의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의 삶이 강해지고, 나의 믿음이 약하면 약할수록 나의 삶이 약해지고 생활은 짐승 같은 삶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믿음이 적은 사람이고, 의심이 적은 사람은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Ⅲ. 바나바는 마음이 열린 사람입니다.

행11:25-26에 보면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려다가 함께 일꾼으로 일한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당시에 사울이 개종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믿어 주지를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렇게 죽이고 가둔 놈이 언제 또 변할지 누가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때 사울은 굉장히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홀로 기도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바나바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소개도 해 주고, 함께 일하자고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하나 쓸 때에도 지나간 과거를 가지고 쓸모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면 이것은 교회의 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란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군이 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도 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닫쳐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큰 일을 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천년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 예를 들면 마가라는 청년이 1차 전도 여행 때에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마가라는 청년이 힘이 들었던지 중도에서 더 이상 못 가겠다고 포기하고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행13:13) 참 마음 아픈 일입니다. 함께 가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는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훗날에 마가는 이 일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고,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뉘우치고 있었습니다.(행15:1-41)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시 제 2차 전도 여행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에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바나바는 이번에도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고, 바울은 그런 사람은 이제 쓸모 없으니 못쓰겠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은 서로 헤어져 선교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선교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훗날 바울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마가는 바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디모데 후서 4:10에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고 하면서 마가와 함께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레몬서 1:24에서는 마가를 가리켜 "나의 동역자 마가..."라고 불러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문제 청년으로 낙인 찍혔던 마가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바나바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대선 교회가 이렇게 일꾼을 키우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군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열린 마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시기심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람은 시기심이 누구에게나 있는 법입니다. 시기심이란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에 대해서 시기하는 것입니다. 실력으로 말하면 바나바 보다 바울이 훨씬 낫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바울이 온다면 바나바 보다 바울이 인기가 더 좋을 것입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칭찬 듣고 잘한다는 소리를 기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바울이 온 이후로 도리어 교회가 더 부흥하고 발전했습니다. 우리 대선 교회도 마음이 열려야 일꾼을 얻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교회가 더욱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자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누릴 기득권을 포기하고 모든 기득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받아야 할 영광과 칭송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공동체를 사랑하고 세우는 성도로서는 마땅히 극복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에 사람이 만들은 영광과 존귀가 아니라 하나님께 주신 존귀와 영광이 그 사람에게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Ⅳ. 바나바는 재산을 팔아 구제사업을 이룬 사람입니다.

행4:37에 보면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땅을 팔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기업을 포기한 것을 말합니다. 농경 사회에서 농토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바나바는 주님을 위해서 실행하고 공동체를 이룬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을 따라 무소유로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사람들이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것이라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행4:33절 하반 절에 "무리가 큰 은혜를 입어..."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성전 지을 마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기에 다윗을 통해서는 짓지 못하였지만 그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짓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손으로는 짓지 못하지만 아들을 통해서 짓게 하시겠단 말씀하나 듣고 열심히 재산을 모아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준비를 다해 놓았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다윗에게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해석을 해 줍니다. 행7:46절입니다. 거기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고 스데반은 설교하였습니다. 무엇입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가 바나바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입니다. 우리 대선의 온 성도들도 착한 사람들이 되십시다. 착함의 증거로 사랑과 순종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이 충만해서 염려근심 다 주께 맡기고 성령께서 인도하심을 따라가시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사람에 대해서 열려서 자기에게 돌아 올 기득권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포기해서 하나님께 주시는 진정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여러분! 우리 모두가 큰 은혜 받아서 바나바 같이! 다윗과 같이 큰 일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