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37:1-9)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고 (99.8.15. 염광 주일설교 요약 54회 광복절)
우리에게
조국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지금부터 55년 전에 조국의 광복을 맞이했던 우리의 조상들에게는 대단히 뜻깊은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우리의
조상들은 나라를 잃은 설움을 톡톡히 맛보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패전으로 말미암아 이 강토 위에 찾아온 광복은 우리 백성에게 조국의 의미를
말할 수 없이 분명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다시 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조국은 무엇입니까.
주전
587년에 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했습니다. 유다의 멸망은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유다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로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완전히 허물어졌습니다. 왕궁은 불타고 귀인의 집과 백성의 집들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은 패전국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유다 백성에게 가장 큰 충격이 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이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가지고
있었던 큰 신념가운데 하나는 세상이 다 멸망해도 예루살렘 (시온)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시온니즘이라고 부릅니다. 유다 백성은 심지어 물질주의라는 극악한 죄악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미 3:11).
물론
선지자들은 유다 백성의 이런 모순적인 태도를 무서울 정도로 맹렬하게 공격했습니다 (미 3:12). 결국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도무지 생각조차 해 볼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1). 조국을 잃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천년기를 앞에 두고 있는 이때 조국을 새롭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민족성을 개조해야 합니다. 우리 백성은
대체적으로 조급성을 보입니다. 한국인의 조급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하나가 보행자 신호등의 체계입니다. 신호등의 파란 불이 켜지고 나서 서너
발 도 걷지 않았는데 벌써 깜박입니다. 마음도 발걸음도 조급해집니다. 둘째로 우리는 통일을 성취해야 합니다. 세 가지 통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먼저 남북의 통일입니다. 문화교류, 민간교류, 서신왕래, 전화왕래, 여행자유화 등을 통하여 남한과 북한 사이에 자연스럽게 평화적인 통일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동서의 통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나라가 발전하려면 지방색이 없어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하의 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직도 이 나라에는 스스로를 귀족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천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시의 일부를 귀족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있고, 상류사회를
구성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향 때문에 서민들이 사는 지역은 행정적으로 취약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은 모든 면이 눈부시게 발전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상하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이 나라는 새로운 천년기에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조국을
잃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나라없는 백성은 몸없는 옷과 같습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의 설움에서 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포로된
유대인들에게 노래를 청하였습니다.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3). 이때 유다백성은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었습니다 (2). 이것은 악기를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설움 중에서도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은총의 도시이며 하나님의 임재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포로가
된 시인은 예루살렘을 잊을진대 모든 것을 잊으리라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 볼 때는 애국적인 결심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속으로 보면
신앙적인 결심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유다의 백성은 하나님을 사모하기에 조국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조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우리의 일터로 주셨으니 이 나라에 하나님의 생명을 심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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