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설교

모세를 만든 세 가지 질문 (히 11:23-27)

공 상희 2007. 7. 21. 11:16

모세를 만든 세 가지 질문 (히 11:23-27)

이 시간에 “모세를 만든 세 가지 질문”이라는 제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 셋을 들라고 질문하면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이 세 사람을 든다고 합니다. 그 만큼 모세는 존경 받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존경을 받는 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믿음을 가졌고 또 하나님께 크고 귀하게 쓰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 어린이들과 교사들과 성도들을 모세처럼 귀하게 써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렇게 크고 귀하게 쓰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인류 역사 속에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한 가지는 그들에게는 끊임없는 질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질문은 있지만 그들에게는 남보다 더 진지하고 깊이가 있고 보다 바르고 궁극적인 것에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바른 질문에 바른 해답을 갖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에게 놀라운 점은 그의 일생 온전히 누구보다 진지한 질문의 연속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일생 질문하며 살았고 그 질문의 답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여기에 그가 위대하게 쓰임을 받은 비밀이 있습니다. 이번 성경학교 기간 중에도 모세와 같이 늘 좋은 질문을 하고 좋은 답변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이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럼 위대한 모세를 만들어준 그 질문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1. 그의 질문은“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랬습니다. 이 구절만 보아도 모세의 생애가 얼마나 기구한지 짐작 가시죠? 모세는 애굽에 히브리인 남아살인정책이 시행 되던 시대에 태어나 3개월간을 히브리인으로 삽니다. 그러나 더 이상 아이를 감출 수 없어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버립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 나라 바로왕의 공주가 건져 자기 아들을 삼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애굽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를 기를 유모가 친 어머니이다 보니 모세는 그 어머니의 지도 아래 결국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히브리인임을 선포하게 돕니다. 그러니까 또 다시 히브리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장성 과정에서 모세가 자기에게 던진 끊임없는 질문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이 자라면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앉아도 나는 누구냐? 서도 나는 누구냐? 다른 아들은 뛰어 놀 때도 나는 누구냐? 하는 고민에 빠집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라는데 왜 나는 애굽 사람을 닮지 않았을까? 애굽인은 흑인인데 왜 나는 피부가 흴까? 혹은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는 어머니를 닮지 않고 길러주신 유모를 닮았는가 하는 사실 등 자기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요 갈등입니다. 그 결과 모세는 자신이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인생에 성공하려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넘어지면서도 나는 누구인가? 쓰러지면서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내 부모가 누구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낳아주신 분 길러주신 분 다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그런 가운데 있다 해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즉 나는 세상 사람인가? 천국의 시민인가? 나는 세상 애굽인인가? 아니면 하늘에 속한 천국의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 죄악으로 물든 꺼먼 죄인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나를 보면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꺼먼 모습이 아닙니다. 흰 세마포를 입은 의롭고 영광된 새 사람입니다. 이 답을 알기까지 끊임없는 질문해야 하고 알았다면 허상을 물리치고 실상에 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육의 눈으로 보면 우리가 죄인이지만 신령한 눈 복음의 눈으로 보면 우리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신 산 새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드디어 어느 날 나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아니다. 나는 히브리인이라고 선언한 것처럼 이처럼 우리들도 자신을 아담 안의 죄인이라고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은 죽고 하늘의 복되고 영광된 사람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죄와 저주의 모습을 자기 모습으로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옛 것은 부정하고 새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복음에 선 믿음이요, 영광된 새 자화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 진리는 우리를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만드는 위대한 진리입니다. 이 아름다운 복음의 진리에 온전히 서셔서 가장 위대하고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모세가 위대한 것은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질문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25절에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자신이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향한 의붓어머니의 기대와 사랑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배반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문헌에 의하면 그 때 바로의 공주는 하세프수트 공주로서 애굽의 왕위에 두 번이나 올랐던 여인으로서 대단한 실권자였습니다. 더구나 공주에게는 다른 아들이 없었기에 가만있어도 왕위는 모세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모세에 대한 공주의 사랑과 기대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가만만 있어도 애굽의 권세와 영화는 모세의 것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의붓어머니의 사랑과 기대를 배반하고 비참한 히브리 노예를 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모세의 갈등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고 싶은데 애굽의 영광과 의붓어머니의 사랑과 기대 때문에 배반할 수 없습니다. 애가 타고 가슴이 타고 잠 못 이루는 오랜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내게 무엇이 중요할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내 육신의 안락인가? 아니면 하나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인가? 아마 이런 갈등은 그가 어느 정도 장성한 후부터 40세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드디어 그 질문 앞에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받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처럼 진정한 인생의 성공자가 되려면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가치의 갈등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나에게 세상이 더 가치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더 가치 있는가? 하나님을 더 사랑할까? 세상을 더 사랑할까? 죄를 더 사랑할까? 의를 더 사랑할까? 지금 많은 성도들은 그 갈등 속에 있습니다. 이 갈등은 각인에 따라서는 몇 달 혹은 몇 년 혹은 일생을 그 갈등 속에서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갈등상태에 있는 한 하나님의 복은 받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은 다 썩고 사라질 세상 것을 왜 그렇게도 못 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지중지하던 것 다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에서 버리라는 말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나에게는 하나님 외에는 없다라는 답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나의 보물이 되셔서 역사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죄를 버릴 수 있을까요? 24절에 “모세는 장성하여” 그랬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영적으로 장성하면 다 이겨집니다. 늘 은혜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가? 이 질문이 우리를 위대한 사람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 말씀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참으로 귀하고 크게 써주실 것입니다. 참으로 큰 복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3. 모세는 “내 백성을 어떻게 구원할까?” 하는 질문을 가졌습니다.

출2:11-12에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했습니다.

이 모세의 행동 속에서 그가 얼마나 자기 동족을 사랑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나 깨나 그에게는 자기 동족 구원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혈기로서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왕자가 애굽인 몇 사람 죽였다고 문제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당시 모세에게는 궁녀 출신의 다른 라이벌 된 왕자가 있어 모든 바탕이 탄로나 미디안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미디안 40년의 목자 생활 속에서 마음에 그치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내 백성을 구원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는 늙어만 가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박해는 더 심해만 가고 그 소식을 들은 모세는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하나님 주의 백성을 어떻게 구원할 수 없을까요? 저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어요.” 날마다 가슴 치며 부르짖었습니다. 어떻게 구원할까요? 이 질문은 모세가 미디안 40년 동안에 쉬지 않고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이 모세를 만든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나는 할 수 없는데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하나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방법도 힘도 없습니다. 내가 나섰다가 도리어 더 어렵게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그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모세의 통곡이 있어야합니다. 나는 안 되고 주님이 역사하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다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답을 가지고 날마다 엎드려 부르짖고 기도하고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셔서 200만의 자기 백성을 구해낸 것처럼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일을 하실 것입니다. 모세는 그 답을 호렙산 반석의 떨기나무에서 확실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못하지만 주님이 하시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날마다 엎드린다면 그는 질문의 답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위대한 일을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대한 모세를 만든 세 가지의 질문은 우리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나는 누구인가? 복음 안에서 영광된 자기 존재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또 무엇이 중요한가? 세상인가? 하나님인가? 분명한 결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떻게 죄인들을 구원할 것인가? 이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 시대 모세를 쓰신 것처럼 이 한 시대 하나님께서 가장 귀히 쓰시는 가장 위대한 우리 어린이들과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중고등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부 못 하는 사람의 7가지 방법  (0) 2007.08.25
예수께서 하신 일  (0) 2007.08.25
중고등부 설교  (0) 2007.07.13
살아 역사하는 교회 (행 11:19-26)  (0) 2007.07.13
당신의 방은?  (0) 2007.07.04